서양사

마케도니아 역사 1: 첫 시작, 필리포스2세와 명실상부 그리스의 패권국, 알렉산더 대왕

민훈트 2020. 8. 2. 22:13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지나 약화된 그리스를 재패한 마케도니아. 

후에 나올 헬레니즘과 이를 이끈 알렉산더 대왕의 나라죠.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만 해도 2류 국가였던 마케도니아가 어떻게 30년도 안돼 그리스의 패권국이 됐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이번 편에서는 이 마케도니아를 알아보도록 할게요 :-)

 

< 마케도니아 제국의 역사>

역사상 마케도니아라는 명칭이 등장한 것은 기원전 700년경부터 랍니다. 

그들의 주거지는 두 개의  (바르다르 강과 Haliacmon강) 사이의 비옥한 토지로, 그리스 신화의 나오는 올림푸스 산의 북쪽 지역이었어요. 

 

그들이 역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기원전 512년 경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2세가 유럽 토벌을 감행했을 때, 페르시아에게 정복당해 그들의 속국 되면서부터에요.

이 시대는 마케도니아 역사상 아르케미디안 마케도니아 시대라고 불리었죠.

이 이후에도 마케도니아 왕족들은 여전히 마케도니아를 군림하는 데에는 자유로웠지만, 페르시아가 원할 때 군대를 보내야 했고, 페르시아 왕이 왕 중의 이라는 사상을 인정해야만 했죠. 또한, 마케도니아 지배층들은 페르시아와의 평화를 위해 서로 자식들을 결혼시키기도 했어요. (출처: 위키피디아) 

 

이러한 속국 체제는 기원전 499년 다른 페르시아령 아이오니아가 반란을 일으키자 잠시이기는 하지만 달라지게 됩니다. 마케도니아도 페르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반란을 일으켰거든요.

하지만 7년도 안 가, 기원전 492년 다시 페르시아에게 정복 당해 다시 예전의 속국 체제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들은 다시 페르시아의 왕을 위해 군대를 보내야 했죠. 이 때문에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가 2차 그리스 침공을 감행할 때도, 마케도니아는 그리스 폴리스들이 아닌 형식적으로는 페르시아편에서 싸우게 되죠. 

 

그리스 페르시아 전쟁을 보면, 이 전쟁에서 결국 페르시아가 지게 되었다는 것을 아시죠?

이 패배를 일으킨 숨은 주역에는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더 1세가 있었습니다. 그는 페르시아 왕의 신임을 얻어 얻은 정보로 그리스의 폴리스들에게 건네 페르시아의 공격을 방어하도록 했거든요. 이러한 정보 때문에 그리스군들은 페르시아군의 이동경로를 알아낼 수 있었고 미리 침략에 방어한 거죠. 그래서 실패의 근원을 만들었고, 페르시아의 힘이 약화된 것을 틈타 독립을 감행한 거죠. (기원전 479년)

 

독립을 하고 나서 그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리스 연안의 독립왕국으로 인정받았으며, 그리스 친선경기인 올림픽에도 그리스의 국가 중 하나로 출전하게 되죠.

그러면서 기원전 5세기경부터 마케도니아의 지식인, 지배층들이 고대 그리스어를 채택하게 된답니다. (출처: 브리타니카 백과사전)

<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의 마케도니아>

그리스 내전이라고 할 수 있는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의 마케도니아는 큰 입장을 가지지는 않아요. 

독립국이라고 해도 아직은 2류의 작은 나라였기 때문에 어떨 때는 아테네를 다른 때는 스파르타 편에서 싸웠죠. 

 

마케도니아가 이러한 소국에서 벗어나 역사의 주인으로 발돋움시킨 근간에는 필리포스 2세가 있었습니다. 

후에 나올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이기도 한 인물이죠.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필리포스 2세 두상 (출처: 위키피디아)

 

필리포스 2세는 타고난 전술가이자 외교관이었어요.  

기원전 359년 그가 왕위에 오른 직후까지도 아직 마케도니아는 힘없고, 외세의 영향력이 심각한 나라였어요.

이를 탈피하기 위해 필리포스는 자신이 유년기 때 배운 전술을 변형한 새로운 전쟁 기술을 도입하여 많은 외세를 물리쳤고, 그중 일부와는 혼인 전략이나 평화협정을 지으며 국방을 튼튼히 했죠. 

 

필리포스2세가 도입한 새로운 전술(출처: 브리타니카 백과사전)
긴 장대를 가진 마케도니아 "밀집 대형"(출처: 위키피디아)

그의 활약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아래의 지도를 통해 이해할 수 있어요. 

그가 왕위에 올랐을 년의 마케도니아는 저 글자 MACEDON 지역만 있었죠.

제위 10년 동안 그것을 짙은 붉은 부분까지 확장했고, 그로부터 20년 후가 되면 중립 그리스 국(파란 부분)과 페르시아 제국(보라색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마케도니아의 영향권으로 만들었죠. 

명실상부 그리스의 절대권력이 되게 되죠. 

 

필리포스2세 사망당시인 기원전 336년 마케도니아왕국령(출처: 위키피디아)

 

특히 아테네를 2인자로 내려버리게 되죠. 

기원전 338년 일어난 아테네와 마케도니아 간의 대규모 전투인 카이로네이아 전투는 마케도니아의 그리스 내 위상을 높이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죠. 이 전투는 아테네와 마케도니아 사이에서 일어난 것인데, 마케도니아가 압승을 이루게 되죠. 거의 아테네를 괴멸시킬 정도로요. 이 때문에 아테네는 빠르게 승복할 수밖에 없었어요. 

 

승복의 결과로 아테네는 그리스의 실세로 마케도니아를 인정한다는 뜻에서 코린토스 동맹 맺게 되죠. 아테네가 이 동맹체에 참가하자, 아테네의 영향력 밑에 있던 여러 폴리스들도 앞다퉈 동맹에 가입하게 되죠. 

이 동맹은 표면상부터 마케도니아가 우위 권력이었어요. 

이 동맹의 실질적 의장도 필리포스 2세가 맡았고, 군대의 지휘권도 심지어는 동맹의 모임도 마케도니아령에서 진행 됐거든요.

따라서 아테네를 위시한 많은 폴리스들은 저 동맹을 들어갔다는 것은 마케도니아를 그리스 맹주로 인정한다는 뜻이기도 했고, 스파르타를 제외한 대다수의 그리스 폴리스들을 정복하면서 후에 나올 통일된 그리스를 가능하게 했죠. 

< 알렉산더 대왕 >

이처럼 2류 국가를 그리스의 패권국으로 만든 필리포스 2세는 기원전 335년 딸의 결혼식에서 자신의 보디가드에게 암살을 당하게 됩니다. 

이 사건의 배후에 대해 많은 설이 있지만, 어떻든지 간에 후계자 싸움이 일어나게 되죠. 

여기서 전 세계에 가장 잘 알려진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 마케도니아로 치면 알렉산드로스 3세가 방년 20세의 어린 나이로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왕위를 잇게 된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전신상 (출처: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필리포스의 죽음과 어린 왕의 등장으로 기존의 마케도니아령이었던 수많은 도시국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마케도니아의 영향권 아래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란을 일으켜요. 하지만 알렉산더 대왕은 빠른 대응을 감행했죠. 특히 기원전 334년, 고대 폴리스 국가들  힘 있는 폴리스인 테베(Thebes)를 본보기로 무참히 박살내고 도시국가 자체를 괴멸시키자, 반란을 꿈꿨던 다른 폴리스들이 빠르게 수긍하며, 그를 그리스의 지배자로 인정하게 돼요. 

마지막까지 중립국이었던 스파르타도 알렉산더가 페르시아 원정 중이었던 기원전 333년 코린토스 동맹국 중 하나에 의해 강제로 코린토스 동맹에 포함되면서 그리스에서 마케도니아령이 아닌 곳은 하나도 없게 되었답니다

 

< 알렉산더와 아시아 정복 >

그리스의 지배자가 된 알렉산더 대왕은 아시아 정복을 위한 역사상 가장 대규모인 "정복 탐사"를 떠나게 됩니다.

그 시작은 선대 왕들이 그랬듯, 페르시아 정복이었죠. 

(그라니아 코스 전투)

기원전 334년 알렉산더 대왕은 페르시아 군대와 처음 치른 전투이자 페르시아와 치른 3대 전투 중 하나인 '그라니아 코스 전투' (파란색 원, 아래 지도 1)를 승리로 이끌면서 페르시아 원정이 시작되었어요. 

이 전투로 페르시아군의 많은 대 지휘관들이 사망해 전력에 큰 손실을 일으켰고, 이 도시를 거점으로 예전의 그리스 폴리스들이었던 현재 페르시아 령 도시들을 점령할 수 있었죠. 

 

알렉산더 대왕의 아시아 원정 이동경로 1 (출처: 위키피디아)와 그라니아코스 전투

(이소스 전투)

그렇게 승승장구하며,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던 알렉산더대왕군은 3대 전투 중 두 번째인 "이소스전투"(파란 원, 아래 지도 2)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 전투는 4:1이라는 엄청난 수적 열세에서도 마케도니아가 이긴 전투라는 의의도 있지만, 페르시아 제국의 왕이자 왕 중의 왕이라고 불렸던 다리우스 3세가 직접 이끄는 페르시아군을 박살 냈다는 의미에서 중요한 전투이기도 하죠. 다리우스 3세가 얼마나 심각하게 졌는지, 너무 급하게 도망가서 자신의 어머니, 아내, 딸 둘까지 챙기지 못하고 도주를 했다고 해요. (출처: shaw academy, world history)

이 이후부터는 계속해서 페르시아 측에서 먼저 친선조약을 요청하지만 알렉산더 대왕은 받지 않았다고 해요. 

 

알렉산더 대왕의 아시아 원정 이동경로 2 (출처: 위키피디아)와 이소스 전투(파란원)

(이집트 정복)

이 승리로 알렉산더 대왕은 밑으로 내려가게 되고, 여기에서 이집트 문명권과 만나게 된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기원전 332년 그들을 정복하기는 하지만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하게 돼요. 

이 점령의 의미로 그는 이집트인들의 신인 "암몬(Ammon)"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 때문에 암몬의 신전이 있는 곳이자, 암몬의 오아시스라고 불리는 시와 오아시스(Siwa)까지 이동경로를 변경해 다녀오게 되죠. 

이집트의 암몬신 그림 (출처: 위키피디아)
시와 오아시스 전경( 출처: 위키피디아)

(가우가멜라 전투 - 페르시아 정복)

이집트 원정을 끝마치고 다시 페르시아 령으로 진격해 나가는 알렉산더대왕군은 기원전 331년 페르시아제국과 3번째이자 마지막 대격전인 "가우가멜라 전투"를 맞게 됩니다.  

 

페르시아의 왕이었던 다리우스는 예전의 군대보다 더 많은 군대를 데리고 와 수적으로 우세했죠.

하지만 알렉산더대왕은 그 이전에는 보지 못한 새로운 전략, 학처럼 날게를 펼쳐 양 쪽에서 각개전투를 하면서 생긴 빈틈으로 틈새 공격 방법을 동원, 수적 열세에도 페르시아 군대를 전멸시켜버렸죠. 

 

가우가멜라 전투 전술 풀이 (출처: 위키피디아)

이 전투에 패배한 페르시아 군은 산을 넘어 도망을 갔고, 이 덕분에 옛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산물 도시 "바빌론" 페르시아제국의 제2의 수도 "수사(Susa)" 같은 페르시아제국의 주요 도시들을 잇달아 쉽게 정복할 수 있었어요.

이 전투의 패배는 따라서 페르시아 제국에게는 단순한 패배가 아닌 망국으로 들어서는 도화선이 된 것이죠. 

알렉산더 대왕의 아시아 원정 이동경로 3 (출처: 위키피디아)과 바빌로니아, 수사, 페르세폴리스(파란원)

 

그리고 기원전 330년, 페르시아 제국의 200년간 수도였던 페르세폴리스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함락, 처참히 부서지면서 페르시아 제국은 마케도니아 왕국의 일원으로 역사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이게 알렉산더 대왕이 아시아 정복을 시작한 지 5년째 되던 해에 일어난 일이랍니다. 

 

페르세폴리스의 몰락 (출처: CHRISTIAN JEGOU PUBLIPHOTO DIFFUSION / SCIENCE PHOTO LIBRARY)

페르시아의 왕이라는 칭호도 얻은 알렉산더 대왕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지금의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인도 지역인 동쪽으로 원정을 계속하게 됩니다. 

 

(인도 정복과 알렉산더 대왕의 사망)

그리고 기원전 326년 인더스 강 유역에서 고대 인도 왕국 연합군과의 전투인 "히다스페스 전투"에서 마케도니아군이 200여 개의 코끼리 군이 있는 연합군을 박살 내면서 인도 지역까지를 마케도니아령으로 정복하게 됩니다. 

사실 알렉산더 대왕은 더 동쪽으로 나가고 싶어 했다고 해요. (출처: 브리타니카 백과사전)

하지만 군대의 염원으로 우회해 마케도니아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죠. 

 

그리고 반 정도 돌아오던 기원전 323년 바빌론에서 32세의 알렉산더 대왕은 사망을 하게 됩니다. 

혹자들은 병에 걸렸다 아니면 독살되었다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확실한 것은 굉장히 어린 나이에 사망을 하게 되었다는 거죠. 

 

<알렉산더 대왕의 의의>

알렉산더대왕의 마케도니아제국령(출처: 위키피디아)

알렉산더 대왕의 삶은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내포해요.

일단 그의 제국이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다는 점, 그가 비록 정복을 했지만 그들과 동화되려고 노력했고 이에 헬레니즘이라는 융합된 문화가 등장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 페르시아라는 200년간의 대제국을 멸망시켰다는 점, 그리고 이 모든 게 12년 만에 일어난 일이라는 점을 높이 살 수 있죠. 

 

하지만 하나, 전쟁이라는 게 후대에 보면 미화되듯, 이 강대한 제국을 만들기 위해 흘린 피가 수 없었고, 많은 고대의 도시들이 망가졌다는 흑역사 또한 생각해 봐야 되겠죠?


다음 편은 알렉산더 대왕이 일으켰던 드넓은 제국의 이후 행적에 대해 알아볼까 해요. 

이번 편이 너무 길어 힘드셨지는 않나요? 

역사상 가장 방대한 제국인 알렉산더 대왕의 마케도니아 제국. 

다음 편도 부탁드려요 :)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