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

그리스 역사 제4탄: 그리스 고전기 (그리스 황금기, 문화부흥기)

민훈트 2020. 7. 12. 18:32

그리스 고전기는 역사학자들마다 그 기간이 조금씩 다르지만, 가장 정설은 기원전 5세기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이 끝난 시점부터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 대왕이 사망한 때까지라고 정의하죠. 

 

이 시기는 그리스 내전인 펠로폰네소스 전쟁도 일어나고, 폴리스의 약화, 마케도니아 왕국에 확산 등 다양한 대외적 활동이 일어났지만, 그 속은 알차게 발전해 나가고 있어요. 

이 시기의 많은 분야들이 지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뼈대가 되고 있어요.

 

이번 편에서는 그리스 고전기의 발전상, 그리고 이게 왜 지금 현재에도 중요한 황금기인지 설명드릴게요 :)

1. 철학

인간의 본질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고대 그리스에서는 학문의 아버지, 아니면 학문 그 자체로 이해됐을 정도로 모든 것의 근본이 되는 학문이에요. 

 

그렇다면 철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아는 철학자들은 누가 있을까요?

바로 소크라테스,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있죠?

이 분들 모두 그리스 고전기의 사람들로, 2000년 넘게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영감이 되고 있죠. 

그들의 가장 큰 업적이라고 한다면 기존의 신 위주의 생각에서 벗어나 이성적으로 세상을 이해하려고 했다는 거예요. 이게 나중에 르네상스에게도 연관이 되니까요.

자, 그럼 이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아주 간략하게 설명해 드릴게요. 

 

<소크라테스>

세계 4대 성인 중 하나로, 뒤에 나올 플라톤의 스승이에요. 

당시 그리스 사회에 내제되 있던 개인 윤리 타락을 비난하며, 도덕을 중시하고, 도덕은 이성적 사고에 기초해 나오는 것이라고 주장했죠. 

거기에 더 나아가, 신과 별개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끝없는 탐닉을 했어요. 

또, 함을 중시했고,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디서든 무상으로 교육을 했다고 알려져 있어요. 

그 어떤 저서를 남기지는 않았지만 구두 강의를 많이 하였죠. 그에 대한 내용은 주로 플라톤을 포함한 그의 제자들의 저서로 남아 있습니다. 

 

그의 교육방식은 지금도 많이 이용되고 있는 것 중 하나인데요.

바로 일방적 강의보다는 학생에게 계속 질문을 하여 상대로 하여금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알아내어 지식을 펼치게 하는 방법입니다. (소크라테스식 교육)

 

이 사람의 이러한 사상들은 고대 그리스 철학의 근간이 되었답니다. 

 

소크라테스 (출처: 브리타니카 백과사전)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알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인 플라톤. 

철학=플라톤이라고 할 만큼 많은 업적을 남겼죠. 

 

로마시대 제작된 플라톤 두상 (출처: 위키피디아)

대표적으로 그의 책 <대화편>을 통해 이데아라는 것을 남겼는데, 이는 일상의 개념 (크다, 같다 등의 인생의 인식구조)을 정리하는 것이라고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이 이데아는 모든 분야에서 쓰일 수 있고, 현재도 이상적 아이디어, 현실적 불완전성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죠. 

 

또, 그는 이상적 정치에 대해서도 굉장히 관심이 많았어요. 그의 시대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아테네가 약화되는 시절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폴리스가 더 잘 다스릴까를 고민했겠죠?

그는 가장 이상적인 정치는 철학자가 다스리거나, 왕이나 지배층이 완전한 철학자가 되었을 때 가능하다(출처: 플라톤의 책 "The Republic")고 밝히기도 했어요. 

 

플라톤의 업적 중 또 하나는 아카데미 설립입니다. 

그는 자신의 제자들을 모아 아테네 외곽의 장소에서 강의를 하고 했는데, 이를 아카데미라고 불렀습니다. 

이러한 명칭은 오늘날 까지 이어져, 공부를 하는 장소라는 의미에서 XXX아카데미라고 하죠. 

많이 보셨죠?

이것도 플라톤의 업적이 현재까지 남은 부분이라고 할 수 있어요. 

 

라파엘이 그린 고대 아카데미 (출처: 위키피디아)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의 제자 중 가장 알려진 아리스토텔레스. 

너무너무 많은 업적을 남겼어요. 

그는 물리학부터 드라마 예술까지 많은 분야까지 다양한 분야에 책을 남기기도 했어요. 

그리고 후에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기도 했죠. 

로마시대 제작된 아리스토텔레스 흉상( 출처: 위키피디아)

 

그의 대표적 업적으로는 형식논리학(formal logics)과 삼단논법이 있어요. 

그는《분석론 전서》(Prior Analytics)의 편찬으로 형식논리학이라는 개념을 설명했죠. 

형식논리학이란 판단과 개념 같은 사고의 참과 거짓을 확인하기 위해 추론의 형식상 타당성 성립 조건을 연구하는 학문이에요. (출처: 위키피디아).

그중 가장 유명한 연구방법이 바로 삼단 논법인데요, 이는 쉽게 얘기해 2가지 사실을 가지면 마지막 사실을 알 수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사람은 죽는다'와 '나는 사람이다'라는 것을 두 개 안다면, 미지의 '나는 죽는다'라는 명제가 참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는 거죠. 

 

또한 스승인 플라톤의 초감각적 이데아론을 발전시켜 인간에게 가까우면서 조금 더 현실적인 자연물을 지배하는 원인들을 인식하는 것에서 이데아적 현실주의를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현실주의를 교육방식에도 적용했는데, 이 때문에 당시 교육기관으로는 스승 플라톤의 초감각적 이데아론에 입각한 '아카데미'와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실주의에 입각한 '리세움(Lyceum)', 이렇게 두 곳으로 운영했다고 해요. 

 

마지막으로 그는 '동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만들었는데, 이 안에는 관찰적, 이론적 요소가 다 들어있었어요. 그는 이 분야에 대해 수많은 책을 편찬했고, 이러한 그의 저서들은 19세기 이전까지 동물학 분야에서 가장 좋고 방대한 정보를 가진 것이었답니다. (출처: 브리타니카 백과사전)

 

2. 수학

<피타고라스>

당시는 분야가 나눠져 있지 않아 사실 피타고라스는 철학자이기도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제일 많이 알려진 걸로는 수학자이니까 수학분야에 넣었어요. 

 

피타고라스 흉상 (출처: 로마박물관)

 

피타고라스는 기원전 570년부터 기원전 495년 살았던 사람으로, 아마 우리에게 피타고라스 정리로 제일 잘 알려져 있을 거예요. 

수학 시간에 많이 배우셨죠? 하하. 저도 많이 봤던 기억이...

피타고라스의 정리

 

피타고라스는 수학으로 우주의 원리를 알아내려고 노력했던 사람이에요. 

그가 남긴 수많은 수학적 기하학적 원리는 후에 나올 사람인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에도 영향을 미치게 돼요. 

왜냐? 피타고라스 정리에 나오는 저 '완벽'한 직각삼각형도 현실에는 없는 이데아의 하나로 이해되기 때문이죠. 

 

마지막으로 피타고라스는 모든 것이 수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었고 음악 또한 수학의 한 분야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음악의 음표도 수학공식의 하나로 생각했죠. 

그가 대장간을 지나다가 소리의 높낮이 방식을 알아내게 되죠. 바로 줄을 정확히 반으로 줄이니 음표가 정확히 한 옥타브 높다는 사실을 알아냈죠. 이를 토대로 줄의 길이와 음표의 높이를 비교해 알아낸 숫적 배열이 바로 조화수열, 그리고 음악의 합이 바로 완전 5 음표입니다. 즉, '도'와 제일 잘 어울리는 음표는 5도 위인 "솔".

 

피타고라스 음계 찾기 (출처: 위키피디아)

<에우클레이데스>

미국식으로 유클리드라고도 불리며, "기하학"의 아버지이죠. 

그는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이라는 13권짜리 책을 지어 기하학과 정수론에 대해 설명했죠. 이 원론은 공리에서부터 원리를 이끌어내는 논리적 방식을 채택했는데, 이는 현대의 수학까지도 연결되고 있어 수학계 고전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출처: 위키피디아)

가장 큰 업적은 사물의 위치를 x축과 y축으로 나타내는 틀, 에우클레이데스의 거리를 들 수 있죠. 그 이전까지는 거리로만 나타내던 것을 유클리드는 2개의 축을 들어 설명했죠. 이는 정확성을 더했을 뿐 아니라, 후에 2D가 아닌 3D, 즉 도형으로도 발전하게 돼요. 우리가 배웠던 도형과 관련된 많은 수학의 기초가 되는 거죠. 

 

에우클레이데스의 거리 (출처: 위키피디아)

이 외에도 이 저서를 통해 현재까지로도 쓰이는 유클리드 호제법, 즉 2개의 정수의 최대공약수를 구하는 알고리즘과 소수의 무한성에 대한 정리인 유클리드 정리가 전해지고 있어요. 

<아르키메데스>

수학자이자, 철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아르키메데스. 

많은 것들을 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아르키메데스의 원리죠.

이것은 부력을 통해 불규칙적인 모양의 물체의 부피를 계산하는 것인데, 이를 통해 예를 들면 원의 부피를 구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로 구하는 원주율(출처: 위키피디아)

또한, 적분이 없던 시대에 '무한소수'라는 개념을 만들어냈고, 포물선과 직선으로 둘러싸인 도형의 넓이와 그 안의 삼각형의 넓이의 관계를 증명하기도 했죠.

아르키메데스의 논리 (출처: 위키피디아)
그 외에도 도르래를 이용해 물을 끓어오는 아르키메데스의 나선 양수기 모형도 있는데, 이는 현재도 많이 사용되고 있어요.
아르키메데스의 나선양수기 (출처: 위키피디아)

3. 의술

<히포크라테스>

철학과 마술에서 의술을 분리해 의학이라는 학문을 만든 선구자. 

의료계의 아버지라고도 불리죠. 

그의 업적 중 하나는 바로 의술 아카데미를 만든 것이었는데, 이 기관으로 인해 기존에 철학과 마술의 하나였던 의술을 분리해 의학/ 의료라는 새로운 학문/전문성을 열었죠. 지금 우리에게 의료진, 의료기구, 병원 등이 있는 것은 히포크라테스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어요.

 

또한 그는 병이라는 게 신이나 죄, 미신 때문이라 믿던 그 시기에, 생활습관, 음식 섭취 등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을 주장한 몇 안 되는 인물이에요. 이러한 생각에 그는 일생동안 많은 병들을 발병률, 재발률, 통증 정도, 위치, 환자의 생활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구분하여 그 치료법과 효능을 적어 두었는데, 이러한 모음집은 히포크라테스 전집 (Hippocratic Corpus)이라는 이름으로 발간되었어요. 현대에 들어서기 전까지 가장 근본적인 의료서로 사용되었고, 현대 의약의 기본이 되었죠.

 

14세기 발간된 히포크라테스전집 (출처: 위키피디아)

  

마지막으로 그의 의술 윤리. 지금도 전 세계의 의사들의 윤리강령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그가 중시했던 윤리로, 의사들이 환자의 진료기록을 비밀로 하며, 일부로 독약을 주지 않으며, 몸 전체를 철저히 진찰하겠다는 강령들이 들어 있어요. 

 

기원전 3세기 경 히포크라테스선서의 일부 (출처: 위키피디아)

4. 역사

<헤로도토스>

우리가 그리스-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알 수 있는 이유, 바로 헤로도토스 덕분이죠. 

"역사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답니다.

그의 활동은 모두 체계적 사료 수집으로 시작되어, 정확성을 검증하고, 잘 배열되고 생생한 줄거리와 그를 근거로 내세우는 빼어난 사료 배치로 각광을 받고 있죠. 

 

헤로도토스의 흉상( 출처: 위키피디아)

그의 저서인 <역사>는 그를 더욱더 유명하게 했는데요, 그는 이 책을 좁게는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을, 넓게는 그가 여행했던 그리스 연안에 대해 작성했죠. 그는 이 여행을 하며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하며 그가 듣고, 연구한 것들을 기록했어요. 후에 사람들 중 일부는 그가 다룬 내용이 거짓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점차 유물과 유적지가 발견되면서 상당수가 사실이었다는 것이 밝혀졌죠. 그러면서 원래 그리스어 "탐구"에서 유래되었던 이 "역사"라는 용어가 학문의 명칭이 돼었답니다. 정말 아버지 맞죠? 

<투키디데스>

"역사는 영원히 되풀이된다"라는 말을 남긴 걸로 유명한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직접 겪으면서 수집한 사료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라는 책을 썼죠. 

 

투키디데스의 흉상 (출처: 위키피디아)

그는 그의 저서 처음에 썼듯이, 인과관계에 따라 엄중하게 사료를 분석하여 연구를 감행했기 때문에 후세는 그를 과학적 역사관이라는 새로운 사관을 창시했다고 인정하고 있으며 정의보다는 국가 간 패권을 기반으로 그 관계를 살펴보는 정치적 현실주의적 역사학파의 시조로도 인정하고 있다.

5. 정치

<페리클레스>

투키디데스의 저서에 의하면 "아테네 1 시민"이었던 페리클레스는 장군이자 고대 그리스의 정치가입니다.

 

페리클레스 흉상(출처: 위키피디아)

그는 그리스 고전기를 황금기로 만든 사람으로 문화와 건축에 많은 투자를 하고, 또 투자를 유치한 인물이죠. 

그래서 혹자들은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중인 기원전 461년부터 펠로폰네소스 전쟁 시작기인 기원전 429년까지를 페리클레스 시기라고 부르기도 해요. 

 

대표적인 건축유적으로는 파르테논 신전과 아크로폴리스가 있죠. 

모두 그의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지금까지도 아테네, 그리스를 대표하는 건축물들이죠. 

 

아크로폴리스 전경 (출처: 유네스코)

다른 업적은 바로 그리스 민주주의를 꽃피웠다는 거죠. 그가 아테네를 운영하던 이 시기는 아테네가 성장하던 시기였죠. 그는 이 시기에 국민들의 참여를 존중하고 장려했어요. 그리고 자유발언을 중시하고, 또 아테네 영향력 아래 있는 식민국가에게도 민주주의를 퍼트렸죠. 

6. 문화, 예술

<소포클레스>

그리스 3대 비극 시인 중 한 명으로 비극 예술의 완성자라는 수식어가 따르는 인물이에요. 

그는 100편이 넘는 극을 지었다고 전해지지만 현존하는 것은 7편뿐이에요. 

 

그의 작품들은 모두 인간의 운명을 다루고 있는데, 이러한 운명을 대화로 풀며 그 근원을 찾는 것이 주 내용이에요. 

 

대표적 작품으로는 <오이디푸스 왕>이 있어요. 

이 작품은 어머니와 아들의 애착, 아버지와 아들의 대립 등을 다루고 있어 이후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에 의해 설명된 바가 있을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죠. 또,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오이디푸스의 갈망은 인간의 실존적 조건으로 해석된답니다. 

 

또한, 그는 기존의 극의 3 부극 방식을 없애 극의 단순성을 없앴고, 제3의 인물을 넣어 주인공들로만 이루어져 밋밋한 연극을 다각화했다고 해요. 

<아리스토파네스>

고대 코미디/희극 계의 아버지. 

그는 단순히 웃는 게 아닌 당시의 정치, 사회문제에 대한 철저한 탐구를 담은 희극을 썼던 사람으로 그 이전의 코미디와 그의 코미디를 나눠 설명하기도 하죠. 

또한, 그가 남긴 유산들은 지금까지도 당시 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패러디, 외설스러운 대사, 욕구를 1차원적으로 표현, 번뇌, 극대화된 과장 그리고 가면 등을 통해 아테네의 일반적 삶을 표현하면서 웃음을 주었고, 몇 명의 인물을 빼고는 타깃 되어 희극의 주체로 사용되었죠. 신과 정부 같은 존재들은 주로 이 희극의 주체로 제외되었는데, 딱 한번 그의 희극인 바빌로니아에서 국가인 바빌론과 제우스 신을 희극화했다는 것으로 아테네 정부에게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네요. (출처: Ancient History 백과사전)

 

아리스토파네스 흉상(출처: 위키피디아)

7. 고전 그리스의 의미

마지막으로 이 시기에 대해 의의를 밝힌다면, 가장 먼저 지금까지 대다수의 지식의 바탕이 되는 학문을 이룩했다는 점을 들 수 있어요. 물리학, 기하학, 수학, 민주주의, 의약, 드라마, 코미디 등 현대 사회의 중요한 부분들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두 번째 이 짧은 고전기 시기에 이토록 많은 분야의 대가들이 등장했다는 것과 이들의 성취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겁니다. 

제가 열거하지 못한 수많은 분들이 계셔요. 또, 열거한 분들 중에서도 다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신 분들도 계시죠. 

 

마지막 가장 중요한 세 번째, 바로 이 고전기는 후에 로마에 의해 이어지면서 발전되어 서양의 문화의 근본이 되었고, 비잔틴제국에 전달되어 슬라브와 이후 이슬람 고전기, 후에 서양의 르네상스에까지 이어지게 되죠. 또한 이 그리스 고전기를 표방한 신고전주의 양식들이 18세기, 19세기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나타나게 되기까지 한답니다. 

 


그리스 황금기 대단하죠?

자, 문화에 대해 잘 아셨으면, 다시 이제 정치사로 가볼까요?

다음 편은 페르시아-그리스 전쟁 이후 잠시의 평화기를 끝낸 그리스 폴리스 내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대해 알아볼 거예요. 

이 전쟁으로 그리스의 화려한 무대가 마케도니아를 따라 로마로 힘의 이전이 일어나게 되는 게기가 되기 때문에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답니다. 

그러면 다음 포스트까지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