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

그리스 역사 제 6탄: 2차 펠로폰네소스 전쟁 (아르케메디안전쟁기, 시칠리아 원정, 데실리안 전쟁기)

민훈트 2020. 7. 23. 02:28

자, 바로 5탄에 이어 2차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살펴볼 거예요. 

 

30년 평화조약을 맺었지만 여전히 서로 간 갈등이 심각했던 스파르타와 아테네.

스파르타는 아테네가 강성해지자, 두려움을 느꼈고, 아테네는 스파르타가 자신들의 행동을 규제하는 것에 화가 났죠.

결국 맺어진 지 15년 만인 기원전 431년 스파르타의 왕이 아테네 인근 아티케로 파병을 하면서 짧은 평화시기는 끝이 나고, 2차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나게 된답니다. 

<2차 펠로폰네소스 전쟁>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그 기간을 학계에서 크게 3가지로 나눠 분리하고 있습니다. 

이 포스트에서도 이를 따라 세 가지 기간으로 나눠 설명하도록 하겠어요. :-)

1. 아르케메디안 전쟁기 (Archimedean War): 기원전 431년 - 기원전 421년

처음 아티케로 파병을 지휘했던 스파르타의 왕 아르케다무스 2세의 이름에서 유래된 시기예요.

기원전 431년 처음 스파르타가 그리스 본토로 출격할 때 그들의 명목은 그리스 본토 폴리스들을 아테네의 힘에서 자유롭게 하자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그들에게 승리의 조건은 아테네로 하여금 어떠한 형태든 스파르타에게 항복을 하는 것이죠. 

 

1600년대 그려진 스파르타의 아르케다무스 2세의 그림 (출처: 위키피디아)

하지만 이를 본 아테네 입장은 달랐어요. 그들은 아테네 도시만 수비하고 버티면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자신들은 해전을 중심으로 하고 물자, 자원 등은 전에 만든 항구와 아테네를 잇는 장성을 통해 들여오면 되니까요. 

 

이러한 입장 차이는 스파르타가 기원전 431년 처음 아티케를 침략했을 무렵부터 보여요. 처음 스파르타가 아티케에 왔는데, 거의 버려져 있었어요. 그리고 스파르타 육군이 북상하는 동안에도 해전만 일어났죠. 거기에 덧붙여 기원전 429년 아테네 시민의 2/3을 죽게 만든 전염병 페스트까지 아테네에 속출하면서 기원전 427년 스파르타는  손쉽게 아테네의 동맹국들 몇 개를 탈취할 수 있었어요. 

 

여기에 아테네 휘하 폴리스 몇 곳이 반란을 일으킨 당시 상황까지만 보면 스파르타의 압승으로 보였죠.

하지만 전혀 아니었어요. 

아테네는 기원전 426년 새로 부임한 지휘관이 더 강경공격책을 시행하면서, 그 반란들을 손쉽게 제압하고 오히려 스파르타가 있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와 그들의 동맹국들을 압박하기 시작했어요. 

특히 스파르타 바로 인근에 있는 항구도시 필로스(pylos)를 점거하고, 거기에 요새를 지어 스파르타 탈주민들을 거둬주는 행위는 스파르타에게 패배의 치욕과 함께 경제의 근간인 시민과 노예층들이 줄어들면서, 경제적 손실도 함께 이룩했죠. 

 

2차 펠레폰네소스 전쟁 진격도 스파르타군(붉은 색), 아테네군( 푸른색)(출처: 위키피디아)

 

이때 처음으로 스파르타인들이 아테네와의 화해를 요청했지만, 전쟁 강경파였던 클레온이라는 당시 아테네 지도자에 의해 묵인되죠. 

 

 

이후 아르케메디안 전쟁기 후반으로 가면서 스파르타는 아테네를 정복하겠다는 초기 목표를 아테네 영향권 나라들을 자유롭게 한다로 변경하면서, 북 에게해 지역을 타켓팅하게 됩니다. (출처: https://www.livius.org/)

스파르타인들은 그 폴리스들에게 반란을 조장했고, 아테네의 전략요충지인 암피폴리스를 정복하게 되죠. 

이를 되찾기 위한 싸움에서 앞서 열거한 그리스의 클레온을 포함 많은 강경파 인사들이 전사하면서, 다시 평화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게 되고 결국 기원전 421년 키아스의 평화 조약이 체결되면서 이 전쟁기는 끝이 나게 된답니다. 

2. 평화기: 기원전 421년 -  기원전 415년

키아스의 평화 조약은 원래 50년간 평화를 약속하는 것이었어요.

또, 앞선 전쟁으로 취득한 쌍방 점령지를 반환하는 게 조약의 내용이었죠.

 

하지만 이러한 점은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어요

일단, 대대적인 점령지 반환은 일어나지 않았죠.

또, 평화 이룩 6년 후인 기원전 415년, 아테네가 평화를 깨고 대규모 원정군을 시칠리아(Sicily) 섬으로 보내면서 그 이듬해에는 이 평화조약이 유명무실해졌고, 기원전 413년 본격적으로 2차전이 시작 되게 됩니다. 

3. 아테네의 시칠리아섬 원정기: 기원전 415년 - 기원전 413년

시칠리아 원정기 당시 세력도 붉은색: 아테네 동맹국, 푸른색: 스파르타 동맹국, 노란색: 페르시아 제국 (출처: 위키피디아)

그렇다면 아테네는 왜 시칠리아섬으로 원정을 갔을까? 

가장 직접적인 원인 두 개는 바로 아테네 동맹국중 하나인 세게스타(segesta)를 돕기 위함과 자신들에게 필요한 자원인 목재를 얻기 위함이에요. 

 

그렇다면 이 원정이 왜 문제가 될까요?

바로, 세게스타와 싸우고 있던 옆 폴리스 국가가 바로 스파르타의 동맹국이었기 때문이죠. 아테네의 개입으로 인해 수세에 몰린 상대가 스파르타에게 지원을 요청하면서 아테네 vs 스파르타가 된 거죠.

 

결국 이 전쟁은 아테네가 참혹하게 패배하게 되죠. 

그들의 함대들이 뱃길을 건너오다가 폭풍우를 심하게 맞아 거의 소멸했고, 아테네의 중요인사들은 싸우는 중 죽거나 유배 보내지게 되었어요. 

그리고 더 나아가, 한번 어긋난 평화는 아예 끝이 났어요.

그러면서 이 지긋지긋한 전쟁의 마지막 시기, 데실리안 전쟁기 (Decelean war)가 시작된답니다. 

4. 데실리안 전쟁기(기원전 413년 - 기원전 404년)

이 전쟁기의 이름이 되는 데실리안은 아테네 북쪽 도시로 은세공을 하는 아테네의 중요 거점 중에 하나예요.

이 도시는 기원전 413년 스파르타에 의해 정복되었는데, 혹자들은 이 도시의 중요성 때문에 이 도시가 수복된 것을 두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최종적인 아테네의 패배가 불가피했다고 말하기도 한답니다. 

 

아무튼 이 데실리안 전쟁기에 들어서면서 스파르타는 아테네를 박살하는 것에 집중해 함께할 동료들을 모으게 돼요. 그러면서 예전의 적이었던 페르시아와도 손을 잡게 되죠

불과 100년 전만 해도 페르시아를 막겠다고 아테네와 손을 잡았었는데 말이에요. 

 

이 동맹이 일어나자, 아테네에게 복속되어 있던 몇몇의 폴리스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반란을 일으켰어요. 

이러한 점들만 보면 엄청 전쟁이 쉽게 끝났을 거 같지만 이러한 역경 속에서도 아테네는 생존을 했고, 어떤 때는 옛날 제일 강성했을 때만큼 성장하기도 했어요. 

 

그렇다면 아테네를 끝내 무너트린 사건은 뭐였을까요?

바로 기원전 406년 일어난 아이고스포타모이 해전(Battle of Aegospotami)에요.

지금까지 잘 따라오신 분들은 아테네는 해전에 강하고, 스파르타는 육지전에 강하다는 것을 알고 계실 거예요. 

하지만 이번은 달랐어요. 바로 스파르타가 페르시아 제국의 무기와 병력 도움을 받아 아테네 해군을 몰살한 거죠. 

해군의 패배는 아테네의 패배를 가져왔어요. 육군으로 스파르타에게 게임이 안되거든요. 

 

결국 기원전 404년 아테네는 스파르타와 평화조약을 맺게 되면서 그리스 패권 다툼도 끝나게 돼요. 이 조약에는 기존에 스파르타의 심기를 거슬렀던 장성 철거, 12척 이상되는 배는 제조 금지, 1년에 일정량만큼 돈을 보낼 것 등 아테네보다 스파르타가 우위임을 증명하는 조항들로 이루어졌죠. 그리고 이로서 스파르타는 명실상부한 그리스의 제1의 권력 국가로 인정되죠. 

5.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의미/의의

스파르타를 맹주로 인정했다는 거 말고, 이 전쟁은 후에 나올 사건들의 배경으로도 작용해요.

 

오랜 기간 그리스 땅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이 전쟁 이후 대다수의 폴리스들의 힘이 약화돼요.

이로 인해 외부의 침략에 더욱 약했죠. 

따라서 이후 나올 알렉산더 대왕과 그의 국가 마케도니아에게 쉽게 먹힐 수밖에 없었어요. 

 

또, 그리스 처우에 관한 의견 차이로 스파르타와 그의 동맹국 코린토스, 페르시아 그리고 테베 간의 사이가 안 좋아졌고, 그에 이어 이후 스파르타가 계속 정복활동을 감행하자 코린토스의 전쟁 (기원전 396년 -기원전 387년)이 일어나기도 하죠. 이 과정에서 대다수의 땅이 페르시아에게 넘어가고 스파르타도 거의 멸망하게 됩니다. ( 아주 적은 양의 스파르타인들만 남아 연명하게 되죠.) 

 

마지막으로, 그리스의 문화 황금기도 이 전쟁에서 아테네가 패배를 하고, 힘이 약화되면서 끝나게 된답니다. 

그들의 문화는 후에 로마로 건너가 지금 우리의 문화 근간이 되지만, 그리스 영토를 중심으로 하던 황금기는 끝이 나게 됩니다.  


재밌으셨나요?

오늘은 그리스 세력싸움이지만, 이로 인해 로마나 알렉산더 대왕이 등장하는 배경이 된 펠로폰네소스 전쟁 2차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혹자들은 이를 보고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싸움이다라고 할 수 있지만, 당시 상황을 보면 거의 2차 세계대전 급으로 싸웠던 것을 알 수 있죠. 

아테네를 중심으로 하는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한판 승부. 

 

자, 다음 편은 이제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더 대왕과 헬레니즘, 그리고 로마로 이동하는 그 시기를 설명해볼까요?

점점 역사도 다각화되고 알아야 할 것도 많아지지만, 그래도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럼 다음에 만나요 :)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