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

마케도니아 역사 2: 알렉산더 대왕 사후 디아도코이 전쟁

민훈트 2020. 8. 10. 23:31

알렉산더 대왕이 사망하고 그 강대한 제국은 어떻게 됐을까요?

역사 교과서 속에서는 " 후계자가 없어 제국은 수많은 디아도코이에 의해 분해되었고, 후에 로마에게 복속되었다"라고 표현했죠?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가요?

 

자, 그렇다면 이 제국의 행방을 찾으러 가 볼까요?

<다수의 디아도코이(Diadochi) 등장>

계승자 혹은 후계자라는 의미의 디아도코이는 알렉산더 대왕 사후의 분열된 지역을 이끄는 장군들이 자신이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자라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을 일컫는 명사로 쓰이죠. 

 

엄청난 제국을 만들었지만 정해진 후계자도 없이 급작스럽게 사망한 알렉산더 대왕.

그나마 후보로는 약간 지능이 낮은 알렉산더 대왕의 이복동생 아리다이오스(후에 필리포스 3세), 태어나지 않았지만 알렉산더 대왕 정실부인 태생의 아이(후에 알렉산드로스 4세) 그리고 알렉산더의 첩이 나은 3살 꼬마 아이 헤라클레스가 있었죠. 

 

이를 두고 당시 알렉산더의 충신이자 공이 많은 장군들은 제각각 다른 의견을 가지고 내놓았죠.

열기가 과열되자, 기원전 323년 대규모 회의를 열었고, 여기서 알렉산더 대왕의 이복동생 아리다이오스와 알렉산더 대왕의 정실부인 소생 (아들일 경우)를 모두 왕으로 두기로 결정했어요. (2 왕 체제)

 

2명의 왕 후보 (직접 그림)

또 하나, 이 둘의 부족함을 채워줄 섭정으로는 페르디카스(Perdiccas)라는 장군을 내정했고, 힘의 독재를 막기 위해 각 구역별로 땅을 나눠 당대의 유력한 장군들에게 지휘하게끔 했어요.   

 

기원전 323년 이후 나눠진 마케도니아 제국( 출처: 위키피디아)

<1차 디아도코이 전쟁(기원전 322년-기원전 320년)>

표면적으로 보면 굉장히 잘한 생각이었지만, 실제로는 섭정의 힘이 강해지는 결과를 초래했죠.

이에 일부의 장군들은 두려움을 느꼈어요. 

왕도 아니면서 군림하려 드니까요. 

 

이 불만의 결정적 도화선은 기원전 322년 알렉산더 대왕의 시체 운반 건이었습니다. 

페르디카스의 명령으로 바빌론에서 마케도니아 수도로 알렉산더 대왕의 주검을 실어오던 행렬을 장군 4명(안티파트로스, 크라테로스, 안티고노스 그리고 프톨레마이오스)이 중간에 탈취하고, 이에 더불어 자기들 멋대로 다른 곳에 매장해 버리게 되는 사건이 일어나요.

페르디카스는 마케도니아의 섭정인 자신의 명을 어기고, 자신의 힘에 대적하는 행위로 간주했죠.

거기에 더 나아가, 안티고노스가 다른 두 명에게 자신의 딸을 혼인시켜 서로의 관계를 돈독히 하며 세력을 키우자 마케도니아 제국은 두 개의 세력으로 양분 되게 됩니다. 

 

1차 디아도코이 전쟁의 시작 파벌 (직접 그림)

결국 기원전 321년 페르디카스가 반섭정파의 중심지인 이집트 지역을 토벌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출병하면서 1차 디아도코이 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페르디카스의 우세했어요.

반섭정파의 크라테로스가 페르디카스와 전투를 하다가 전사하면서 반섭정파가 엄청난 손실을 맞이했거든요. 

 

문제는 나일강에서 벌어졌습니다.

기원전 320년 페르디카스가 이집트를 치기 위해 나일강을 건너려다가 성난 물길에 다수의 병사가 휩쓸려요.

반도 안 남은 군대를 이끌고 그는 다시 건너려고 몰아 새우죠.

이에 성난 군인들이 반역을 꾀했고, 이 상황에서 페르디카스는 죽어요.

 

지휘관이 죽으면 나머지 전쟁은 어떻게 되나요?

섭정이자 지휘관을 잃은 하위 장군들은 서둘러 반섭정파와 협상(트리파라디소스 협의)을 체결해버려요.  

 

이 협의의 중요 내용으로는 반섭정파에서 새로운 섭정을 세우는 것 그리고 기존에 나눴던 마케도니아 왕국 땅을 재분배하는 것이었죠.

어차피 반섭정파가 이긴 거니까 반섭정파 내에서 재분배가 일어나요. 

유럽과 새 섭정은 안티파트로스, 아시아는 안티고노스, 이집트 지배는 프톨레마이오스에게 일임되죠.

이 협정으로 하나로서의 마케도니아 제국의 결합체는 명목적으로 끝나게 돼요. 

 

1차 디아도코이 전쟁 후 세력 재분배 (직접 그림)

<2차 디아도코이 전쟁(기원전 319년-기원전 316년)>

평화가 체결된 지 1년 조금 더 돼, 섭정이었던 안티파트로스가 노환으로 사망해요.

그런데 안티파트로스는 죽으면서 자신의 장성한 아들 카산드로스를 놔두고, 자신의 심복인 폴리페르콘을 다음 섭정으로 내정해요. 

당연히 아버지의 자리를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던 카산드로스는 이 결정에 광분을 하죠.

그는 새 섭정을 대항할 자신과 뜻이 맞는 장군들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 아시아를 담당하는 안티고노스)과 연합체를 만들게 돼요. 이 두 장군은 호시탐탐 마케도니아의 왕권을 가지고 싶어 했기에 기꺼이 동맹을 맺죠. 

 

이렇게 일어난 2차 디아도코이 전쟁은 2명의 허수아비 왕들과 섭정 폴리페르콘을 주체로 왕정파 카산드로스, 프톨레마이오스, 안티고노스반란파 대결구도로 이해할 수 있어요.

 

처음 2년 간은 폴리페르콘이 해전에서 반란파에게 대패하면서, 카산드로스가 우위를 가지게 돼요. 

이때 카산드로스는 폴리페르콘을 밀어내고 마케도니아 수도로 입성, 모자란 왕 필리포스 3세에게 자신을 대표할 섭정으로 정식 인정받게 되죠.

이를 보고 패배해 도망가 있던 폴리페르콘은 수도에서 떨어져 살고 있는 아기 왕 알렉산드로스 4세에게로 가, 그의 어머니인 알렉산더 대왕의 왕비에게 섭정 인정을 받아요.

두 왕과 두 섭정이 된 거죠.

그리고 폴리페르콘은 필리포스3세의 무지와 출신 성분(서자) 임을 명목으로 폐왕을 주장하며 진실된 섭정은 자신뿐이다라고 주장하며 다시 마케도니아 수도로 역침을 감행해요.

이때 아시아 지배를 두고 안티고노스와 라이벌 대결구도에 있던 에우메네스가 합세했죠.(기원전 317년)

 

하필 이때 카산드로스 군대는 다른 도시에 정벌을 나간 상태였어요.

그 때문에 폴리페르콘은 쉽게 도시를 장악할 수 있었죠.

그는 필리포스 3세의 애원에도 왕과 왕비, 남은 카산드로스 군대 일당을 모조리 처형해 버려요. 

이 소식을 들은 카산드로스는 역으로 알렉산드로스 4세와 그의 어머니가 있는 곳을 칩니다. 

그리고 그들을 살려주는 조건으로 폴리페르콘에게 섭정 자리를 내놓을 것을 협상하죠.

협상은 성공해요. 단지 카산드로스가 섭정이 되고 나서 폴리페르콘을 감옥에 넣을 뿐. 

 

아무튼, 아시아지역에서도 안티고노스가 소아시아를 지배하던 리시마코스의 도움으로 정적이었던 에우메네스를 죽이면서,  2차 디아도코이 전쟁은 카산드라를 위시하는 반란군 편이 승리로 끝이 나게 된답니다. 

 

2차 디아도코이 전쟁의 끝 (직접 그림)

<3차 디아도코이 전쟁(기원전 315년-기원전 311년)>

2차 전쟁의 시작은 카산드로스가 했지만, 사실 전쟁의 가장 큰 수혜자는 안티고노스였어요. 

정적도 밀어내고 아시아 전부를 자신의 지배하에 두게 되었으니까요.  

 

힘이 강해진 그는 곧 자신의 원대한 꿈을 표출하기 시작했어요. 

그는 알렉산더 대왕의 옛 땅을 모두 하나의 통일체로 만들어 자신의 방식대로 지배하기를 원했거든요.

이를 이루기 위해 제일 먼저 타깃이 된 곳은 바빌론 지역이에요.

위치 상 바빌론 지역은 에게해를 장악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지역이기도 했고, 알렉산더 대왕의 표식과도 같은 장소였거든요. 

기원전 315년 마케도니아 왕국의 분배 (주황 안티고노스, 초록 카산드로스, 빨강 리시마코스, 노랑 프톨레마이오스)(출처: http://explorethemed.com) 

 

안티고노스의 이러한 움직임에 바빌론의 총독 셀리우코스는 바로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에게 도움을 요청했어요. 둘은 바로 동맹을 맺었고 여기에 안티고노스의 힘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한 유럽의 카산드로스, 그리고 소아시아 지역의 리시마코스가 합류하게 되면서 또 2개의 파가 완성되었죠. 

2차 때와 마찬가지로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된 케이스죠. 

3차 디아도코이 전쟁의 편 나누기 (직접 그림)

이 동맹군은 안티코노스에게 힘의 재분배, 상당량의 아시아 지역을 내놓으라고 주장했어요. 

당연히 받아들이지 않았죠.

이 요구를 어이없게 생각한 안티고노스가 기원전 315년 바빌론 일대를 장악했고, 3차 디아도코이 전쟁이 일어나게 돼요. 그는 바빌론을 정복, 에게해 연안까지 진출했고, 여기서  2차 전쟁 때 붙잡힌 어제의 원수, 폴리페르콘을 빼내 동맹을 맺었죠.

 

이처럼 안티고노스의 힘이 강해지자 카산드로스파의 패배는 확실시돼요.

하지만 인생은 모르는 법, 기원전 311년 안티고노스는 인생의 최대 실수를 해요. 

바로, 유럽 진격에 너무 신경 쓴 나머지 중요한 바빌론 지역에 군대를 두지 않았다는 거죠. 

이를 눈치챈 전 바빌론 총독이자 현 카산드로스의 참모총장인 셀리우코스는 자신의 군대를 데리고 바빌론을 바로 먹어버리죠. 이 실수로 안티고노스는 샌드위치 상태가 돼, 절대 우위에 있던 상황을 협정을 맺어야만 하는 상태로 변모해요. 

 

결국 그 해 겨울, 안티고노스의 회유로 양쪽은 평화협정을 맺게 돼요. 

모두 기존의 자신들의 영향력을 인정하는 대신 유일한 왕인 알렉산드로스 4세가 성인이 되는 시점에 섭정을 파기하고 직접 통치하는 것으로 동의하죠. 하지만 이것은 이후 알렉산드로스가 카산드로스의 자객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파기돼요. 이제 왕가 라인은 알렉산더 대왕의 딸과 결혼한 카산드로스밖에 남지 않죠. 

3차 디아도코이 전쟁의 끝 (직접 그림)

<바빌론 전쟁(기원전 310년)>

이처럼 아무 변화도 없는 무늬만 협정을 맺은 디아도코이들.

특히 안티고노스셀리우코스를 눈에 가시처럼 생각했죠. 

다 이긴 전쟁을 셀리우코스 때문에 졌으니까요.

 

이러한 불만으로 기원전 310년 안티고노스는 대규모 군단을 보내 바빌론을 정벌하려 하죠. 

초반에는 역시 안티고노스의 승리로 보였어요. 

대망의 기원전 309년, 셀리우코스군과 안티고노스군이 총출동된 전투가 일어나게 되죠. 

이 전투는 꼭두새벽에 상대를 급습한 셀리우코스의 대승으로 끝이 나게 돼요. 

 

셀리우코스의 대승은 안티고노스로 하여금 앞으로 바빌론 동쪽에 대한 셀리우코스의 지배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이 만들었어요. 기존의 총독에서 이제는 디아도코이 5명의 땅따먹기의 합법한 일원으로 인정받게 된 거죠.  

기원전 310년 마케도니아 왕국의 분배 (주황 안티고노스, 초록 카산드로스, 빨강 리시마코스, 노랑 프톨레마이오스 파랑 셀리우코스)(출처: http://explorethemed.com) 

<4차 디아도코이 전쟁(기원전 307년 - 기원전 301년)>

바빌론 전쟁이 한참이던 기원전 310년부터 이집트를 지배하던 프톨레마이오스는 북쪽으로 점차 세력을 확장해 갔어요. 이를 보고 가만히 있을 안티고노스가 아니죠. 

안 그래도 동쪽 지역 전부 다 셀리우코스에게 넘어간 상황이었으니까 프톨레마이오스에게까지 땅을 빼앗길 수는 없었죠. 

 

기원전 307년 안티고노스는 자신의 아들이자 천재적 장군 데메트리오스를 보내 프톨레마이오스의 군대와 싸우게 하죠. 데메트리오스는 성공적으로 프톨레마이오스를 다시 이집트로 몰아내죠. (4차 디아도코이 전쟁)

승리 소식을 들은 마케도니아의 대신들은 디아도코이 중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자가 안티고노스라고 칭송하면서, 마케도니아의 왕 자리에 오르기를 청원했어요. 

안티고노스는 당연히 받아 드렸죠. 

 

문제는 이 소식을 듣고, 카산드로스를 제외한 다른 디아도코이들도 앞다퉈 자신들을 왕이라고 칭한 것이에요.

카산드로스만이 이를 거절했다고 해요. 

프톨레마이오스는 이집트 관습에 따라 이집트의 파라오에 오르게 되죠. 

파라오로 표현된 프톨레마이오스 (출처: 대영박물관)

이처럼 4명의 왕과 카산드로스로 나눠진 옛 알렉산더 대왕의 제국은 이제 더 이상 하나의 제국이 아니었어요.

 

아시아의 왕이 된 안티고노스는 이집트보다는 쉬워 보이는 유럽을 정복하려고 노선을 바꾸게 돼요.

바로, 유럽의 카산드로스에게로 군대를 파병한 거죠. 

이 파병에 가장 중요한 거점은 로데스 (Rhodes)라는 도시였어요. (기원전 305년)

로데스는 그리스와 터키 중간에 있는 섬의 도시로 이곳을 장악하면 에게해에 있는 어느 곳이든 파병할 수 있었죠.

현재 지도 속 로데스 위치 (출처: 구글지도)

이 정벌은 카산드로스는 물론,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아시아의 셀리우코스, 테라스의 리시마쿠스에게도 위협이 되었어요.

이 곳을 안티고노스가 지배하면 자신들의 영토확장에도 큰 걸림돌은 물론, 안티고노스가 쉽게 자신들의 땅을 정복할 수도 있었죠. 

안티고노스를 막자는 동일한 생각이 있던 이 4명은 반 안티고노스 연합을 맺게 돼요. 

4차 디아도코이 전쟁 편 나누기 (직접 그림)

4명의 방어에도 기원전 305년, 로데스는 결국 데메트리오스에 의해 안티고노스파에 정복되었죠. 

이후 싸움에 쓸 군대의 주둔지로 유용하게 사용되게 돼요. 

 

계속된 안티고노스와의 싸움에 국력이 많이 약화된 카산드로스는 기원전 302년 평화를 맺을 것을 제안해요.

하지만 안티고노스 입장에서는 조금만 더 싸우면 카산드로스를 아예 밀어내고 정복왕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에 1:1 화합이 아닌 절대적 항복을 원했죠. 카산드로스는 당연히 받아 드릴 수 없었고, 결국 평화협정은 맺어지지 못했어요. 

 

수세에 몰린 카산드로스는 자신의 동맹들에게 도움을 요청, 짜인 4명의 연합군은 맹렬하게 맞서 그리스 연안에서 안티고노스 파를 무찌를 수 있었죠. 

 

다시 자신의 본거지로 돌아간 안티고노스. 

이번에는 빼앗긴 땅 일부라도 가져오자라는 마음으로 5명의 디아도코이들 중 가장 약한 테라스의 리시마쿠스를 공격했어요. 하지만 이 또한 대비하고 있었던 리시마쿠스는 셀리우코스와 연합돼 엄청나진 군대를 이끌고 안티고노스와 전쟁을 버리게 돼요. 여기서 전투의 최강자인 안티고노스가 전사하죠. 그 아들 데메트리오스는 겨우 목숨만 붙이고 도망을 갑니다. 

 

이로서 4차 전쟁도 끝이 나게 돼요. 이제 4명의 디아도코이들만이 남게 되요.

4차 디아도코이의 결과 ( 직접 그림)

 

안티고노스가 죽고 남은 땅은 마지막 승리의 주역인 셀리우코스와 리시마쿠스가 양분해서 가져가게 돼요. 

이렇게 가장 큰 힘을 가진 안티고노스는 역사 속으로 없어지게 된답니다. 

안티고노스 사후 땅의 재분배 기원전 301년 (출처: http://explorethemed.com/)

<전쟁 이후의 상황 >

4개로 완벽하게 나눠진 옛 알렉산더대왕의 제국은 이제 4개의 왕조로 나눠져 다스려지는 것이 당연시되었어요. 

이집트에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지금의 시리아, 이란인 소아시아 동부에는 셀리우코스를 위시한 셀레우코스왕조가, 소아시아 서부에는 리시마코스 왕조가, 그리고 마케도니아 본국은 카산드로스가 다스리는 안티파트로스 왕조 혹은 카산드로스의 왕조가 있었죠. 

 

이들의 말년은 어땠을까요?

 

가장 먼저 마케도니아의 카산드로스는 노환으로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되어 사망했어요.

그리고 후계 과정에서 아들들 사이에 분란이 있었죠. 

이 상황에서 앞서 4차 전쟁 당시 도망가 겨우 목숨을 부지했던 안티고노스의 아들, 데메트리우스가 돌아와 카산드로스의 아들들을 죽이고 왕위를 차지하게 돼요. 여기에 명분을 둘러싼 반란과 격돌이 있죠.

이 시기를 후의 역사학자들은 디아도코이 전쟁의 일환으로 넣으면서 마케도니아의 주인 자리를 두고 카산드로스의 후손과 안티고노스의 후손의 대격돌로 표현하죠. 

결과적으로는 데메트리우스의 아들이 강력한 왕권을 정착시키면서 안티고노스의 핏줄이 승리하게 되죠. 

 

프톨레마이오스의 경우 그나마 디아도코이들 중 가장 평온하게 파라오 활동을 하다 기원전 283년 자신의 아들에게 파라오직을 넘기고 노환으로 사망해요.

 

리시마코스셀레우코스는 서로 지배를 하는 방법에 있어 생각이 달라, 사이가 안 좋다가 기원전 281년 경에는 전쟁을 하기까지 한답니다. 이 전쟁에서 셀레우코스가 리시마코스를 죽이고, 그의 땅까지 셀레우코스 왕조에 복속시키며 엄청난 대왕국을 만들어요. 하지만 이러한 셀레우코스마저도 기원전 280년 프톨레마이오스의 아들에게 암살당하면서 기억에서 살아지게 돼요. 

 

결국 40년을 넘는 기간 계속되었던 디아도코이 1세대 주역들의 싸움은 기원전 280년 마지막 남은 셀레우코스가 사망하면서 끝이 나게 돼요. 

이 이후 그들의 후손들의 왕조들은 자기들만의 정치를 펼치게 되고 서로 영토 쟁탈전을 계속하게 되죠.

그러다가 이탈리아에서 발전한 로마에 의해 하나 둘 편입돼 아예 역사에서 없어지게 된답니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알렉산더 대왕 이후 많은 디아도코이들에 의해 나눠지고 전쟁을 끝없이 하게 된 마케도니아 제국.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로마의 확대도 막을 수 없었고 로마에 의해 복속되는 것을 쉽게 하는 역할도 담당했죠. 

 

이번 편은 좀 길어서 걱정이에요. 

그래도 그 대단했던 알렉산더 대왕의 마케도니아 제국이 어떻게 로마에게 편입돼 갔는지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디아도코이 전쟁을 자세히 알려드리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글을 올려요. :)

 

다음 편에는 조금 더 재밌는 역사를 가지고 돌아올 테니까 그때까지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