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

그리스 역사 2탄: 암흑기를 지나서 폴리스의 시대로 (아테네, 스파르타)

민훈트 2020. 7. 6. 19:10

그리스 역사 1탄을 잘 보고 오셨나요?

그렇다면 바로 시작할게요. 

<고졸기 그리스>

기원전 800년 경 그리스에서는 새로운 국가 형태가 등장하게 돼요. 

바로 "폴리스(polis)"에요. 

쉽게 해석한다면 공동체 국가 혹은 도시국가죠. 

그리스 땅은 본래 산지가 많은데, 이 때문에 사람이 사는 한 구역과 다른 구역 사이에 산이나 골짜기 등이 있어 자연스럽게 구역별로 안전하게 요새화 될 수 있죠.

이 때문에 처음에는 이 구역들에 성곽이나 요새가 새워지고 이들이 주는 안정성에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경제적, 농경적 메카로 발전하고, 이게 하나의 정치체계가 되면서 국가화 되는 거죠. 

이 폴리스들은 각각 다른 독자적인 정치 체제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 모양 또한 절대권력을 갖는 참주(Tyrant)의 군주국, 2명의 지배층 귀족들이 연합해서 다스리는 군주국, 군사적 동맹체 형식 그리고 국민투표로 진행되는 초기 민주주의 형식까지 다양했어요.

이 폴리스들은 하나의 절대권력을 상징했다기보다는 이익에 맞춰 서로 동맹도 맺고, 전쟁도 했죠. 

 

그리스의 폴리스들 (출처: 위키피디아, khanacademy)

위 그림처럼 그리스 인근에는 수많은 폴리스들이 있었어요.

그중 가장 힘의 중심에는 두 폴리스; 스파르타 아테네가 있었답니다. 

 

1. 스파르타

예전에 무한도전을 좋아하셨던 분들이라면 하하가 "스파르타! 죽지 않아!"라고 하던 말을 기억하시겠죠? 

개인적으로 스파르타의 불굴의 투지를 잘 나타내는 말인듯해 좋아한답니다. 헤헷.

 

아무튼, 스파르타는 다른 산지 지방이 아닌 페넬로폰네스반도의 비옥한 땅에 기원전 900년대부터 존재했던 폴리스로, 이른 시기부터 자급자족이 가능했어요. 이는 이점이기도 했지만, 다른 폴리스들과의 교류가 늦어지는 이유이기도 하죠. 

 

고대 스파르타의 영토 (출처: 위키피디아, Territory of ancient Sparta. Data from Kaplan (dir.), Le Monde grec, Paris, 1995, p. 93.)

 

스파르타의 특징 하나는 바로 계급사회였다는 것이었어요.

그들은 자유로운 시민 계급 스파르타인(페리오이코이 Perioeci)과 도시에 예속되어 어느 정도의 자유, 가족 생성은 가능하지만 현재 사는 지역에 예속돼 식량을 제공해야 하는 헤일로타이(헤로트, helot), 그리고 사유재산으로 생각되는 개인 노예가 있었죠. 

이들은 그 계층에 따라 할 수 있는 일도 다 달랐고, 대우도 달랐어요. 

 

두 번째 특징, 바로 2명의 왕과 장로협회에 의해 지배되었다는 점이에요. 

다른 도시국가들과 달리 왕제를 계속했고, 독점 왕이 아닌 두 명의 왕을 두어, 권력이 하나로 모아지는 것을 방지했다. 전시일 경우 이 두 명의 왕이 권력의 핵심이었고, 아닌 일반적인 상황일 경우 60세 이상인 30명의 장로들에 의해 운영되는 장로협회에 의해 주로 도시가 운영되었다고 한다. (출처: 브리타니카 백과사전)

 

스파르타의 전쟁영웅이자 왕 레오니다스 1세의 흉상(출처: 위키피디아)

 

세 번째 전쟁, 그리고 육체적 건강함이 사회의 가장 중요한 점이었다는 것이에요. 

스파르타를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전쟁이에요. 

그리스 폴리스들 중 유일하게 상설 군대를 가지고 있었던 스파르타. 

그들의 인생에 얼마나 이를 중요시했는지, 그들이 상류층이 될 수 있는 방법 또한 전쟁의 공을 얼마나 새웠는지로 구별했을 정도였답니다.

 

이 뿐 아니라 스파르타에는 아고게(Agoge)라는 게 있었는데 이는 7살이 된 스파르타 남자아이들이 무조건 합숙하면서 전쟁기술, 사회성, 그리고 교육을 받는 정부 후원 교육 방식이었어요. 

남자아이들은 이 아고게에서 미래의 군인으로 키워졌고, 그중 리더십을 발휘하는 몇은 뽑혀 지도 군인이나 경찰로 키워졌죠. 그래서 그들이 20살이 되면 이제 정식 군인으로 승격되었고 평생 군인으로 생활하는 방식이었다고 하네요. (출처: history.com) 

정말 탄생에서부터 죽을 때까지 군대와 전쟁만 생각하는 거죠. 

 

그렇다면 여자아이들은 어땠을까요?

그들은 남성들에 비하면 자유로운 생활을 했어요. 

토지를 가질 수도 있었고, 집안일은 물론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을 관리했죠. 

 

특히 스파르타에서는 결혼과 후세를 잇는 것이 중요했어요.

왜냐? 그들은 이러한 후세를 낫는 것이 단순히 나의 유전자를 남긴다가 아니라 전쟁으로 죽은 병사들을 대체할 수 있고, 미래에 도시를 지킬 튼튼한 군인을 양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들을 품을 여성의 건강도 중요했고, 혼인을 미룬 사람들은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공적으로 수치심을 받았죠. 반대로 아들을 많이 낳은 사람들은 어마 무시한 상을 받았다네요. (출처: history.com)

사회상이랑 보면 이해되시죠?

 

이들의 기상은 그들의 멸망 이후에도 서양권에 많이 퍼져, 그들의 문화, , 정치체제, 경제를 선망하여 신격화하는 "라코노필리아"라든지 아님 그들을 다룬 영화를 제작하거나 "300", 유명 게임의 등장인물로도 그려졌답니다. 

 

2. 아테네

 

현재에도 동일한 이름으로 사랑받고 있는 그곳, 바로 아테네입니다.

아크로폴리스라는 산을 중심으로 그 위에는 파르테논 신전과 같은 신전들이, 그 아래에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형태였죠.

아테네 사람들은 자신들의 폴리스를 지켜주는 신을 지혜와 전쟁의 여신 아테네라고 생각했는데, 이 때문에 이 아크로폴리스의 가장 중앙에 크게 아테네를 위한 신전인 파르테논(Parthenon) 신전을 지었답니다. 

 

파르테논 신전 (출처: 브리타니카 백과사전)

그렇다면 폴리스의 양대산맥 아테네의 특징은 무엇이었을까요?

 

가장 첫 번째 특징은 바로 교역이었습니다. 

비옥한 땅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하던 스파르타에 비해 아테네는 농사를 짓기에는 땅이 좁고 척박했죠. 

그래서 더 교역에 힘써야 했는데 이른 시기부터 힘쓰다 보니 점점 다른 그리스 폴리스들과의 교역의 중심이 돼갑니다. 

 

두 번째 바로 많은 법 변화가 이루어낸 민주주의입니다. 

역사 내내 왕정제를 고수하던 스파르타와 달리 아테네는 왕정제에서 점차 민주주의로 변화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한 번에 바뀌었는가?

아니에요.

크게 두 번의 변화가 있었어요.

처음은 기원전 621년 재정된 드라코(Draco)의 성문법이에요.

이 법은 드라코라는 사람이 발표한 법이자 그 이전 통용되던 구두로 된 법(oral law)을 대체하고 살인과 비자발적 살인을 구별했다는 의의를 가져요. 하지만 이 법은 대다수의 벌이 사형이었을 정도로 너무 가혹해 곧 대체되게 되죠. 이 법이 얼마나 가혹했는지, 양배추 하나 훔친 것도 사형이었다네요. (출처: 위키피디아)

드라코의 성문법을 대체한 사람은 솔론(Solon)이라는 정치가입니다. 

그는 드라코의 성문법과 쇠태 하는 도덕, 정치, 경제체제를 구하기 위해 개혁을 감행했죠. 

그의 업적으로는 부의 분배, 빚 탕감, 시민들로 하여금 정치참여 유도 등이 있죠. 

이러한 개혁은 단기적 입장에서는 실패지만, 아테네의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었답니다.  

솔론의 흉상( 출처: 나폴리 국립박물관)

그렇다면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바로, 18세 이상이 된 국민들이 산자락에 함께 모여 정부의 수장, 전쟁 참전 여부와 같은 국가의 중요한 것들을 결정하는 거죠. 

단, 여기에서 국민에는 여성, 노예, 그리고 아테나인이 아닌 부모에서 태어난 시민들은 제외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남자들의 투표라고 요약할 수 있어요. 

 

< 그리스 - 페르시아 전쟁 >

 

나름대로 굉장히 평화롭게 살던 그리스의 폴리스들, 그리고 나름 친선관계를 유지하던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사이가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리스-페르시아 전쟁부터였습니다. 

저번 페르시아 편에서도 열거했듯이 이 전쟁의 시작은 기원전 499년 아이오니아(Ionia) 반란에서부터였어요. 페르시아 제국령인 아이오니아 지방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를 옆에 있던 그리스의 폴리스들이 도왔죠. 하지만 결국 페르시아 제국이 다시 아이오니아를 탈환하면서 반란은 막을 내려요. 그런데 페르시아 제국 다리우스 왕 입장에서는 이 반란을 도운 그리스 폴리스들이 마음에 안 드는 거예요. 

또 다른 폴리스들도 제국의 안정을 위협하자 아예 그리스 전체를 다 정복하자고 마음을 먹게 돼요. 

그래서 기원전 492년 제1차 페르시아 전쟁이 일어나게 돼요. 

이 전쟁은 1차 전쟁 2년, 정전 10년, 2차 전쟁 1년으로 총 13년 걸린 전쟁으로 당시 치고 굉장히 큰 대전이죠. 

이 전쟁으로 폴리스 간의 관계도 많이 달라지게 된답니다. 

 

개인적으로는 계속 이 포스트에 열거하고 싶지만, 너무 길어지면 읽기 힘드시니까.

다음 편에서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에 대해 더 자세히 알려드리도록 할께요. 

그럼 빨리 다음 편으로 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