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

세계사 1탄: 페르시아 제국( 메디아제국, 아케메네스 제국 그리고 키루스 대제)

민훈트 2020. 6. 28. 18:49

안녕하세요 :)

오늘은 우리에게는 생소할지 몰라도, 세계사적으로 대단한 제국을 일으켰고, 후에 그리스와 융합되어 헬레니즘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만들어 낸 페르시아에 대해 알아볼 거에요. 

 

<페르시아>

페르시아의 역사에는 여러 왕조가 등장합니다. 지금의 이란 지역에 있었고, 그 전성기는 기원전 550년부터 기원전 330년까지 있던 "아케메네스 왕조"가 있죠. 그렇다고 이 왕조가 처음인 것은 아닙니다. 

메디아라는 왕조가 가장 이른 시기 생긴 것으로 추정되고 있죠. 

 

사실 페르시아라는 명칭 또한 이들 자신이 사용하던 명칭은 아니에요. 하지만 당시 정설을 만드는 역할을 했던 그리스인들은 앞에 열거한 아케메네스 왕조의 발생지이자 최고의 왕인 키루스 2세이자 대왕이라고 불리었던 분의 본적지가 이란 땅의 페르시아였던 까닭에 그들을 일컬어 "페르시아/ 페르시아인"이라고 불렀죠. 이게 지금까지 인정되어 정식 명칭이 이란이 아닌 페르시아로 된 거예요 :)

 

본 편에서는 메디아 왕국부터 시작해, 가장 전성기인 아케메네스 제국을 살펴볼 꺼에요. 

아케메네스 제국 이후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에게 정복되어 이 땅에 새로운 왕국이 나오기는 하지만 이 부분은 그리스 쪽에서 살펴볼 거랍니다. 

 

메디아 제국

메소포타미아 편에 등장했던 아시리아인들의 기록에도 등장하는 메디아인들.(출처: Encyclopedia 백과사전)

그들이 언제부터 국가를 설립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학자들은 대략 기원전 11세기부터 존재했다고 믿고 있어요. 

8세기 후반 경 이 메디아 도시국가들이 융합되기 시작했고, 수많은 외부의 침략으로 분리 또 통합되었죠.

그들의 역사가 제대로 확인/전해진 것은 그들이 아시리아인들의 수도를 정복하고, 수 많은 메디아인 도시국가들을 융합한 기원전 6세기 경부터입니다. 

 

기원전 600년 경 메디아 제국 영토(녹색)(출처: 위키피디아)

이때부터를 역사학자들은 진정한 메디아 제국이라고 지칭하죠. 

 

하지만 이 제국에 대한 정보는 거의 전무하답니다. 

이 제국령 도시들 또한 현재 잘 알지 못하고, 따라서 이 제국의 유물이라고 딱 밝힐 수 있는 것도 없죠. 

글자나 법령 등 이 시기를 잘 이해할 수 있는 물건도 나오지 않았어요. 

 

유일하게 확실하게 아는 것은 그 마지막 왕인 아스티아게스기원전 550년 페르시아의 왕이자 외손자키루스 대제(=키루스 2세)에 의해 왕위에서 내려오면서 제국이 막을 내린다는 거예요. 이 마지막 왕인 아스티아게스 역시 후에 나온 편파적인 소설에 의해 굉장히 무능력한 폭군으로 그려졌지만, 이 또한 사실은 알 수 없답니다. 증빙이 없거든요. 

 

18세기 테피스트리에 그려진 키루스 대제에게 왕위를 넘기는 메디아 제국 왕 아스티아게스 (출처: 위키피디아)

 

아케메네스 제국

메디아 제국을 이은 아케메네스제국은 아케메네스 왕조의 제국으로 그 시작은 페르시아(Persia)라는 도시를 기점으로 기원전 691년 아케메네스 왕조의 시조인 테이스페스(Teispes)왕에 의해 설립됩니다.

그는 나라의 이름을 자신의 아버지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죠. 

그의 사후 그의 왕국은 둘로 나눠 아들들에게 넘어갔고, 남부를 다스리던 큰 아들의 손자가 바로 위에 메디아 제국을 멸망시키고 아케메네스 제국을 이룩한 키루스 대제이자 키루스 2세인 거죠. 키루스 대제의 어머니의 아버지이자, 키루스 대제 본인의 외할아버지는 메디아의 마지막 왕인 아스티아게스입니다.

아무튼, 아케메네스 제국의 시작은 이 키루스 대제가 왕위에 오른 기원전 559년을 그 시기로 둬요.

 

1. 키루스 대제

키루스 대제가 왕위에 오를 즈음까지는 사실 메디아 왕국의 소국이었어요. 하지만 얼마 안 있어, 이유는 확실치 않지만, 외할아버지와의 의견 대립이 심화되었고, 전쟁을 일으켜 승리를 하게 되면서 그 규모가 커지더니 기원전 550년 메디아 왕국을 합병하죠.

이때부터 메디아 제국이 아닌 페르시아라는 명칭을 쓰기 시작하면서 페르시아 제국이라고 불리게 되죠.

이 뿐만 아닙니다. 

키루스 대제의 정복활동은 계속되죠. 

먼저 북쪽의 리디아 왕국(현재 터키 북부 흑해와 만나는 지방들)과의 전쟁을 낙타를 이용해 승리하면서 기원전 547년 복속시켰고, 그다음에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신 바빌로니아 왕국으로 진격, 기원전 539년 완벽하게 승리하며 제국을 확산시켜갔죠. 

 

 

그가 유명한 이유는 또 하나 있는데, 바로 관용정책이에요. 

그는 정복한 나라에 있던 지배층체제를 인정하고, 지역 종교를 인정했죠. 이러한 체계는 피정복지가 정복당한 이후에도 계속 경제적 활동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키루스 대제 본인과 페르시아 제국에 반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네요. 이러한 점을 잘 나타내 주는 유물, 바로 키루스 대제의 실린더(The Cyrus the Great Cylinder).

이 실린더에는 인종, 언어, 종교적 평등, 전쟁 노예를 원하는 곳으로 보내주는 것, 그리고 전쟁 중 발생한 모든 종교사원 파손을 복구할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고 하네요(출처: iranchamber.com)

 

키루스대제의 실린더 (출처: http://www.iranchamber.com)

 

이처럼 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키루스 대제는 기원전 530년 사망하게 됩니다. 그가 얼마나 성대하게 사랑받았는지 그의 시신은 수도로 옮겨져 커다란 무덤으로 조성되었는데, 지금까지도 유적이 남아 많은 관광객의 사랑을 받고 있죠. 

키루스 대제의 묘 (출처: 위키피디아)

키루스 대제 사후 그의 아들인 캄비세스2세가 왕위에 올라 비록 짧은 제위기간 동안 이집트를 복속시켰고, 그 아들 사후 다음 왕이자, 장군 출신인 다리우스 1세 트리키아왕국과 마케도니아 왕국을 정복하면서 영토적으로 가장 넓은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각 키루스대제(녹색), 캄비세스2세 (청색), 다리우스 1세(홍색) 시기 제국 영토 (출처: 위키피디아)

2. 다리우스 1세

다리우스 1세, 또는 다리우스 대제의 초기 집권 시기는 왕족이 아닌 그의 정당성을 확립하는 용도로 영토확장이 주를 이뤘답니다.

페르폴리스에 남겨진 다리우스 1세 (출처: 위키피디아)

이게 어느정도 안정화가 되자 그의 다른 활약들이 등장하죠. 

그는 특히 경제적인 면에서도 많은 변화를 이룩해요. 

일단, 다릭(daric)이라는 정형화된 통화를 등장시켜요.

바로 아래의 순도 95.83%의 통화죠.

 

다릭 (출처: 위키피디아)

 

정형화된 통화가 왜 중요한가?

바로 누구한테나 동일하고, 누구와의 교역도 가능해 호불호가 나뉘는 물물교환 시기보다 더 경제활동이 활성화 되게 되죠. 또한 국가 입장에서도 어디에 더 투자를 많이 할지를 정할 수 있어요. 

이러한 장점은 페르폴리스(Perpolis)라는 새로운 수도 건설을 가능케했어요. 

이 수도는 다른 아케메네스 수도들에 비해 고성지역의 요새 같은 특징을 가지는 데, 이는 다리우스 1세 시절 국가 재정이 많았기 때문에 이를 지키기 위해 편의성보다는 안전성을 염두에 둔 결정이었다고 하네요. (출처: khan academy, world history)

그밖에 다리우스 1세의 업적은 바로 교역로를 편성/재건하는 일이에요.

가장 대표적으로 페르시아왕도가 있죠. 

수사(Susa)라는 도시에서 사르디스(Sardes)라는 도시까지 총 2700km 거리를 7일 안에 갈 수 있도록 하여 페르시아의 통신을 아주 빠르게 했는데, 이를 두고 그리스의 역사가 들까지 후대에까지 "페르시아 운반부만큼 빠른 것은 없다"라고 할 정도였다네요. (출처: 브리타니카 백과사전)

또한 당시 육로로 하는 교역이 안전하지 않은 시기 였기 때문에 이 도로의 설립은 육로 교역에게 안전한 길이 되주었다고 하네요. (출처: khanacademy)

 

페르시아 왕도 (출처: 위키피디아)

3. 아케메네스 왕조의 몰락과 그리스 속국화

다리우스 1세 치하 말기인 기원전 499년 그리스와 경계에 있는 도시인 아이오니아(Ionia)에서 아케메네스 왕조를 반대하는 투쟁이 일어나게 되고, 그 투쟁은 그리스인 도시국가들의 후원을 받게 되죠. 그러면서 그리스의 군사들이 본격적으로 아케메네스 제국의 영토에 들어오게 됩니다.

 

아케메네스 왕조와 그리스의 싸움(페르시아 그리스 전쟁)은 1차전 때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우세로 보였어요. 기원전 480년 경 다리우스 1세의 아들이자 당시 왕이었던 크세르크세스 1세가 승기를 놓치면서 장기전으로 가게 되죠. 물리보다는 경제적이나 정치적 타격을 가하는 전술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 이후부터는 앞서 살펴본 광활한 영토도 없어지고, 제국이라기보다는 왕국의 작은 상태로 지내게 되죠. 

 

그리고 무려 100년 후인 기원전 334년 당시 마케돈의 왕이었던 알렉산더 1세가 페르시아를 마지막으로 공격했죠. 이 공격을 저항하던 중 기원전 330년 페르시아의 마지막 왕 다리우스 3세가 신하들의 반란으로 목숨을 잃고, 이 혼돈한 상황에서 알렉산더는 페르시아 왕국을 병합, 직접 페르시아 왕에 오르게 된답니다. 

비록 이후 그 이전의 지배체제나 정부관료들을 그대로 둬 통치하게 하지만, 엄연히 그리스 제국의 땅이기 때문에 아케메네스 왕조의 역사는 끝이 나게 됩니다. 

 

하나 더, 알렉산더 대왕은 그리스 편에서 더 자세히 보겠지만, 굉장히 넓은 땅을 이룩했지만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되죠. 그래서 그의 제국은 긴 분열권 싸움을 겪게 되는데, 페르시아 영토 역시도 이에 한 파트를 담당해요. 그리고나서 알렉산더 대왕 밑에 일하던 장군인 셀리우코스가 이 후계자 싸움에서 페르시아 통치권을 얻으면서 "셀리우코스 제국"을 만들어나가게 된답니다. 

 


재밌으셨나요?

우리에게는 생소할지 몰라도, 역사 상 굉장히 밝게 빛났던 페르시아 제국에 대해 알아봤답니다. 

더 아시고 싶으신 부분이 있으시면 댓글 남겨주세요 :)

그럼 다음에 만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