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4대 문명 제 4탄: 황하문명 (양사오문화, 룽산문화, 하나라(얼리타우 문화), 상나라/은나라)

민훈트 2022. 10. 10. 19:10

안녕하세요 :)

 

오늘은 4대 문명의 마지막 편, 중국의 황하문명에 대해 살펴보려고 해요. 

다른 3 문명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이집트)이 지리적으로 서양에 가깝다면 황하문명은 동양의 문명이라고 할 수 있죠. 

황하문명은 최근까지도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문명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최근 중국의 장강 주변에 더 오래된 문명의 발견되면서 황하가 아닌 장강이 4대 문명으로 편입돼야 하지 않냐는 의견들도 나오고 있어요. 

하지만, 아직까지는 공식적으로 4대 문명은 황하문명이니 이 편에서는 장강 문명이 아닌 황하문명을 알아보겠습니다. 

 

이 4대 문명 편은 총 4편으로 이어지니 함께 읽어보시는 걸 추천드려요. 

1. 메소포타미아 문명

2. 이집트 문명

3. 인더스 문명

4. 황하 문명


 

1. 황하문명

황하 문명은 중국 3대 긴 강 중 하나인 황하강 주변에서 일어납니다.

황하강
황하강 유역 (출처: 위키피디아)

문명의 시작점에 대해서는 역사학자들마다 의견이 조금씩 다른데, 어떤 학자들은 이 지역에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1만 년 전을, 다른 이들은 기원전 5000년 경 전기 신석기시대인 양사오 문화나 기원전 3000년경의 룽산 문화를, 또 다른 사람들은 기원전 2000년 경의 하나라(혹은 문화)를 그 시작점으로 나눠 설명하죠. 

신기하게도 황하 문명의 은 대다수 학자들이 기원전 1100년경 상나라가 멸망하는 것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문화라는 표현이 처음으로 쓰인 양사오 문화에서부터 소개를 드리겠습니다. 

 

1) 양사오 문화

 

대략 기원전 5000년 경부터 기원전 3000년경까지 존재하던 양사오 문화의 기반은 신석기시대입니다.

이 문화의 유적들은 황하강의 중류지역인 중국의 허난 성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며, 신석기시대 문화이기 때문에 주로 농사나 수렵생활, 초기 공예, 특히 토기가 유적, 유물로 등장하지요.

양사오문화
양사오 문화 지역 (출처: 위키피디아)

이 중 가장 대표적인 유물로는 채색된 토기, 즉 채도예요. 

이 채도는 양사오 문화의 대표적 유물 양식으로, 빨간색, 흰색, 또는 검은색으로 칠해진 토기들을 말해요. 

 

양사오 문화 채도
양사오 문화기 채도 (출처: 위키피디아)

 

2) 룽산 문화

 

이러한 신석기 문화인 양산 문화는 점차 시대가 변하면서, 룽산 문화로 변화해갑니다. 

룽산 문화는 기원전 3000년 경부터 2000년 경까지 있던 신석기 후반 청동기 초반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권이자 주로 황하강 중류부터 하류까지 폭넓게 존재했던 문화죠.

 

이 룽산 문화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고도화된 토기제작 기술을 들 수 있었는데, 특히 고온으로 구운 도자기 형식인 흑도, 회도가 많이 발견돼요.

이 흑도와 회도는 색깔뿐 아니라, 그 모양과 용도도 다양했죠.  

 

룽산문화 회도
룽산문화 세발 달린 가마솥 회도 (출처: 위키피디아)

또 다른 특이점으로는 도시의 등장을 들 수 있어요. 

이 룽산 문화는 그 이전 문화권과 달리 성벽이 등장하고, 벽이나 기둥을 세운 가옥이 등장해요. 

아래 이 룽산 문화의 대표하는 도시 유적이자, 현존하는 가장 큰 규모의 유적인, 타오시(Taosi) 유적에서도 이러한 특징을 잘 살펴볼 수 있어요.

 

타오시 유적 (출처: https://www.ancient-origins.net)

그 밖에도 이들 문화는 청동기 생활상 특징에서 자주 나타나는 발전된 농업과 수공업, 이를 통한 사유재산, 지배층의 등장이 드러나며, 인구수 또한 급증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변화들은 당연히 다음에 나올 나라/국가인 하, 은, 주나라의 밑거름이 되었겠죠?

 

3) 하나라 (확실하지 않음)/얼리타우 문화

 

하나라는 사실 아직도 역사적으로 실존한 나라인지 가상의 신화적인 나라인지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나라예요.

중국을 위시한 몇몇의 역사학자들은 "정식적으로 역사상 인정된 최초의 나라"인 상나라(=은나라) 이전에 나라가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많은 역사학자들은 그건 그냥 다른 문화(즉, 얼리타우문화)이지, 나라가 아니다고 주장하죠. 이 얼리타우문화의 특징으로는 왕조시대처럼 궁전, 도시, 그리고 묘터를 지었다고 전해져요. 

 

아무튼, 이 하나라 혹은 얼리타우문화는 약 기원전 2000년경부터 기원전 1600년경까지 존재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초기 청동기 시대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다양한 청동유물들이 발견되죠. 

이들의 청동 유물들을 통해 알 수 있는 이 문화권의 특징은 청동 제작방식이 굉장히 발전되었다는 것인데, 예를 들어 그들의 청동 유물들은 섬세하게 장식되었으며, 그 무늬나 모양 또한 기하학적이었고, 다양했다고 알려지죠. 

얼리타우 문화 하나라의 청동유물
얼리타우 문화/ 하나라의 청동유물 (출처: 위키피디아)

 

잠시 사설을 덧붙이자면, 하나라의 실존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만든 어휘 중에 우리에게도 익숙한 "요순시대를 그리워한다"라는 관용구가 있습니다. 이는 태평성세를 그리워한다는 말로, 여기서 나오는 요순시대가 바로, 이 하왕조의 임금이었다고 알려져 있는 요임금과 순임금의 제위 기를 지칭하죠. 이 요임금은 덕으로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고, 순임금은 평화를 이룩했다 해서 둘을 묶어 '성군(성군)'의 대명사로 일컬어진다고 하네요.

 

요순임금
후대에 그린 요(오른쪽) 순(왼쪽) 임금 (출처: 위키피디아)

4) 상나라 (은나라)

 

상나라 혹은 은나라는 기원전 1600년 경부터 기원전 1040년 경까지 존재한 왕조로 현재까지로는 정식적으로 인정받는 중국 최초의 왕조입니다. 나라의 정식 명칭은 '상나라'지만, 마지막에 '은'으로 수도를 옮겨 후대의 많은 나라들이 이를 '은나라'라고 부른 통에 '은나라'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헷갈림을 방지하기 위해 전 세계에 통용되는 '상나라' 명칭을 사용할게요.

 

상나라 영토
상나라의 대락적 영토범위 (출처: 위키피디아)

 

그럼 본격적으로 상나라의 특징을 정리해볼까요? 

 

4-1.  도시화

상나라는 임금이 있는 곳을 토대로 성벽이나 촌락, 도시 주거가 발전시켰고, 몇몇의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인구밀도보다 많을 정도의 인구수가 이러한 도시에 살고 있었다고 해요. ( 출처: history.com)

대표적인 이러한 도시가 바로 안양지역의 은허라는 도시인데요, 바로 수도였다고 할 수 있는 곳이죠.

1899년 발견된 갑골문을 토대로 조사하며 밝혀진 은허 유적지에는 궁전, 일반 주거, 외곽의 장인의 공방 및 그들의 주거지, 묘 등 다양한 도시화의 증거들이 출토되었어요.

 

은허유적 박물관
은허 유적지 박물관 전경 (출처: 위키피디아)

특히 이 은허에서 1976년 상나라 왕비인 부호의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그 무덤의 축조 연대가 정확하고 그 안의 사람이 누구인지도 확실하여 역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되었답니다. 이 무덤 안에는 16명의 순장된 사람이 있었고, 보석과 술을 담는 통, 머리핀, 화살촉 등이 발견되었답니다.

 

부호의 무덤
부호의 무덤 안 (출처: 위키피디아)

 

4-2. 갑골문자의 등장

아까 위에서 얘기란 은허에서 발견된 것으로, 거북이 뱃가죽이라는 '갑'과 소의 어깨뼈라는 '골'을 합쳐, 주로 갑골에 새겨져 있다고 해서 갑골문자라고 해요.

 

갑골문자
갑골에 새겨진 갑골문자 (출처: history.com)

주로 이러한 갑골문은 점을 치는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갑골을 불에 구워 나오는 그 균열을 통해 점을 보았고, 그 결과를 가장자리에 새겨놓았죠. 이러한 문자의 해독으로 점 내용을 통해 상나라의 실체가 밝혀지며 지금까지 몰랐던 상나라의 제사 양식과 조상신, 전쟁, 농사와 풍년/흉년, 왕의 통치 등 다양한 내용을 알 수 있게 되었죠.

 

이러한 갑골 문자는 현재 중국의 한자의 원형이라고 할 만큼 비슷한 점이 많아요.

또한 이를 통해 당시 두 가지의 수리적 논리 방식이 드러나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1부터 10까지의 숫자를 통해 사고하는 방식이라네요. (출처:history.com) 

 

4- 3. 청동 기술

상나라의 근본은 청동기시대예요. 

따라서 청동기로 만든 제사용 유물이 다량으로 등장하죠. 

이들의 특징으로는 점차 틀을 이용한 제작방식이 등장했다는 건데, 그로 인해 똑같은 물건을 재생산할 수 있었대요. 또한 그 규모에서도 점차 큰 물건들 또한 생산할 수 있었다네요. 

 

아래의 후모 무정은 상나라 시대 작품으로 현재까지 남아있는 고대 청동기 유물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해요. (가로 110cm, 세로 79cm, 높이 130cm) 또한 원래 3개의 발과 원형 모양인 다른 정(용기)에 비해 직사각형에 4개의 다리를 가졌다는 차이가 있죠. 하지만 손잡이, 몸통, 다리의 하나하나 새겨진 문양을 보면 상나라 시대의 기술이 얼마나 높았는지 알아볼 수 있죠. 

 

후모무정
후모무정 (출처: 위키피디아)

4- 4. 달력의 등장

이밖에도 상나라는 달력을 사용한 최초의 문화권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어요.

현재 사용하는 중국식 달력의 모체라고 할 수 있는 이 상나라 시대의 달력은 처음에는 음력 달력을 사용하다 거기에 양력을 더하며 12 개월로 된 시스템을 발전시켰고, 긴 달은 30일, 짧은 달은 29일이었으며, 가끔 12월 이후 한 달을 넣어 음력과 양력의 합을 맞추려고 했죠. 

 


찬란한 역사를 가지고 수많은 중요성을 가진 상나라였지만, 그 말년은 여느 나라와 비슷했습니다.

전성기를 지나 몇 번의 왕조의 위기가 있었지만, 무사히 보내다가 말년에 무능하고 폭군인 왕에 의한 멸망기였죠.

포악한 왕이었던 상나라의 31대 왕인 주왕이 중국 4대 미녀 중 하나이자 사치스러웠던 달기에게 빠져 나라를 등한시하고 폭정을 일삼자, 상나라의 하위 나라였던 주나라의 무왕이 반기를 들어 승리하면서 주왕과 달기는 죽게 되고, 상나라는 주나라에 의해 멸망하게 된답니다.

여기 나오는 달기는 중국 고대 4대 악녀의 1인으로 상나라를 망하게 하는 데 큰 일조를 하였고, 후대에 구미호나 요물로 다수 표현되게 됩니다. 

 

상나라 주왕과 달기
중국 고전에 나타난 상나라 주왕과 달기 (출처: 위키피디아)
구미호로 표현된 달기 (출처: 위키피디아)


황하문명은 그 시작점과 끝난 지점이 굉장히 모호한 문명이에요. 

다른 문명들과 달리 초기 문명의 근원인 황하 강에서의 시작점도 아직 역사학적으로 모호하고, 그 끝난 지점 또한 문화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왕가가 그 기원인 황하강을 벗어나 중국 전반으로 확산되어 끝났다는 점이 모호하죠. 따라서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그 근원과 그 끝에 대한 의견이 달라져요.

 

이 편에서는 상나라의 역사까지를 황하문명으로 분류해 열거했지만, 상나라 이후 황하강 유역이 버려진 것이 아니라 이 이후에도 주나라가 명맥을 이어가고, 확산되면서 역사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걸 유념해주세요.;-)

 

나머지 역사는 나라마다 그 내용이 방대하기 때문에 중국사 부분에서 열거하게 될 거예요 :)

 

자, 이번 편까지 4대 문명에 대해 알아봤어요. 

재밌으셨나요? 재밌었으면 500원:-) 농담이고요. 

사실 전 세계에는 이러한 4대 문명이 아닌 다른 문명들이 아주 많아요. 

그들을 하나하나 다 알아보는 것도 재밌는 일이죠. 

아직도 화자 되는 마야문명이라든지, 잉카 문명, 아니면 미국의 아메리카 문명 등등 비슷한 시기에 다른 문명을 이룬 사람들의 얘기는 꼭 기회가 되신다면 한번 알아보시기를 바라면서, 저는 다음 포스트로 찾아올게요. :)

 

그럼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