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인간의 역사 제 4탄: 청동기시대 (지배층의 등장, 고인돌, 비파형동검, 미송리식 토기)

민훈트 2022. 10. 27. 18:47

지내셨나요?

오늘은 신석기시대 이어 본격적으로 사유재산과 계급이 펼쳐지는 청동기시대를 살펴볼까 해요.

청동기 시대는 어떤 변화가 생겼고, 어떤 유물과 유적들이 나오는지 알아보러 가볼까요?

특히 청동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잘 알아봐요 :)



1. 청동기 시대 

청동기 시대는 대략 기원전 3300년부터 기원전 1200년까지 시대를 말해요.

그렇다면 청동기 시대의 특징은 뭘까요?

앞서 살펴본 구석기, 중석기, 신석기시대의 특징과는 뭐가 다를까요?

 

청동기 시대의 특징은  이름에서 있듯 청동을 사용했다는 것이에요. 

 

그렇다면 대체 청동기 사용이 중요할까요?

그건 바로 청동이 가지는 특성 때문에 그래요. 

청동은 기존의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돌에 비해, 구리와 주석이 섞인 합금이라는 점에서 원자재를 만드는 방법이 복잡하고, 따라서 돌에 비해 귀한 자제로 치부되었고, 즉 아무나 없었고, 또한 그 시대 가공기술이 발전했다는 뜻이기 때문이에요. 

 

, 청동의 사용이라는 이 하나의 사실이 당시 시대상이기도 한 불평등 사회지배층의 등장, 공예기술의 발전을 표현한다고 말할 수 있겠죠.

 

그럼 이러한 시대상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1)  지배층의 등장/ 불평등사회로의 돌입

 

청동기 시대의 가장 특징적인 사회상은 바로 지배층이라는 새로운 존재들의 등장했다는 점이에요.

 

인류는 신석기시대부터 공동체 생활 시작했다는 , 이미 알고 계시죠? 

하지만 신석기시대에는 피지배층이니 지배층이니 하는 분류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주로 연장자가 "공동체의 우두머리" 역할을 담당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말이 법이고 하는 그런 불평등한 세계는 아니었죠. 오히려 평등한 사회였다고 정리할 수 있죠.

하지만 청동기시대에 들어오면서 이러한 평등 세계는 변화하게 돼요. 

 

신석기 말부터 농경기술이 발달하게 되었는데, 그에 따라 먹을거리가 풍족해졌고, 인구수가 급등하게 되죠.

, 늘어난 식량에 잉여재산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를 일부의 사람들이 사유재산 화하면서 속칭, 많이 가진 자들, 있는 자들이 생기게 되는 거죠.

 

이러한 자들은 점차 자신의 새로운 힘을 이용해 남들을 부리게 되고, 이 중 일부는 무기를 이용, 다른 지배층, 다른 공동체와 전쟁 하며 점차 더 많은 힘을 기르게 되었죠. 이렇게 지배층을 위시한 공동체들은 점차 도시 국가화되고,  나아가 문명으로 발전하게 되는 거죠. 이때 대표적으로 대두된 문명이 바로 "세계 4 문명"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인더스황하문명이에요. 

 

이러한 세상의 변화로 인해,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존재하는 불평등사회 양식이 심화되는 거죠. 

이러한 변화를  나타내는 유적이 바로 우리에게 익숙한 고인돌이에요. 

 

한국 고인돌
강화도 고인돌 (출처: 위키피디아)

고인돌이라고 하면 주로 무덤으로,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위의 사진처럼 두 개의 돌로 다리를 만들고, 그 위에 더 큰 상판 돌을 얹은 스타일이 일반적이죠. 

고인돌 자체의 크기도 크기지만, 각각 사용된 돌들의 모양이나 크기로 봐서 주로 먼 곳에서 돌을 이동시켰을 것이라고 추정돼요. 

그래서 학자들은 이러한 돌을 멀리서 움직여 오고, 쌓으려면 많은 사람들의 인력이 필요하며, 이러한 거대한 고인돌을 자신의 무덤으로 사용하려면 그 대상이 힘이 있는 지배층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거죠.  

이러한 고인돌은 대한민국, 아시아 지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양상으로 발견되고 있어요. 

 

영국의 고인돌
영국 콘월지역의 고인돌 Lanyon Quoit (출처: 위키피디아)

이 밖에 지배층 계급을 나타내는 대표 유물은 무엇이 있을까요?

바로 청동 유물들을 들 수 있어요. 

 

앞서 살펴봤듯이, 청동기는 매우 귀하고, 약한 자제였어요. 

땅에 있는 돌과 달리 청동을 만들기 위해서는 구리와 주석을 알맞게 혼합, 배합, 제조해야 했죠.

또한 청동 자체가 강한 성질이 아니었기에 쉽게 부러지거나 휘었죠.

그래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농사도구나 무기로는 사용될 수 없었어요. 

즉, 이 시대의 청동 물건은 지배층들의 전유물이자, 일상용이 아닌 의식용 무기, 장신구, 제사용품 등 의식용으로 제작, 사용되었다는 거예요 :).

 

청동 방울
청동으로 만든 의식용 방울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특히 한국 청동기시대의 경우, 특이하게도 청동기로 만든 동검이 자주 발견돼요. 

또한 이러한 동검들은 그 모양에 따라 청동기 전기와 후기/철기시대를 구분 짓죠. 

즉, 비파형 동검은 미송리식 토기와 함께 청동기시대 전반기를, 세형동검은 잔무늬거울과 함께 청동기 후기와 철기시대를 나타내는 거예요.

이 두 개의 연결을 꼭 잘 기억하세요. 

 

그렇다면 좀 더 자세히 동검에 대해 알아볼까요?

일단 청동기 전반적 나타나는 비파형 동검의 특징은 악기(비파)와 같이 굴곡이 있고, 양 옆이 뾰족하다는 거예요. 

중국 요령 지방에서 많이 발견되어 "요령식 동검"으로 불리기도 하죠.

처음 한국 역사학자들은 비파형 동검의 출토지가 다 고조선과 연관되어 있다고 했지만, 후에 굉장히 폭넓은 발견으로, 현재는 비파형 동검, 미송리식 토기, 그리고 탁자식 고인돌이 모두 출토된 지역만이 고조선의 영토로 인정되고 있어요. 

 

비파형동검
비파형 동검 (출처: 우리역사넷)

세형동검의 경우, 그 모습이 위의 비파형 동검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죠. 

우선 거의 곡선이 사라진 평평한 모습이 다르며, 양날에 피 홈과 마디가 있으며, 그 길이 또한 30cm 안팎으로 단검의 형식이죠 (출처: 우리역사넷). 하지만 약간의 굴곡과 긴 하반부, 그리고 형식적이지만 남은 칼 허리 양쪽의 파임으로 인해 위의 비파형 동검의 영향을 받기는 하였음을 나타내기도 해요. 

또한 이 세형동검의 경우, 평양을 중심으로 한반도 전역에서만 출토되고 있기 때문에 "한국식 동검"이라고 불리고 있어요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세형동검
세형동검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돌의 계속된 사용

 

청동기가 귀하고 그 성질이 약하다 보니, 청동기시대에도 대부분의 도구, 연장, 무기는 계속 석기를 사용해요.

단지, 그 쓰임새에 따라 그 이전보다 더 다양화되죠. 

예를 들어 아래의 반달돌칼은 한국 청동기시대 대표적인 농사도구로, 이전 시대에 비해 정확하게 곡식의 이삭을 따는 용도로만 제작되었죠.

즉, 저 두 개의 구멍에 곡식대를 넣어 밀어내는 형식이죠.   

 

반달돌칼
반달돌칼 (출처: 우리역사넷)

 

이밖에도 돌로 만든 도끼, 화살촉, 낫 등도 많이 출토돼요. 

특히 이 돌도끼들은 예전처럼 그냥 나무에 매다는 단순한 방식이 아닌, 가운데 홈이 잡혀 있는 곳에 나무를 정확히 이어 사용하는 정교함을 보이게 되죠.

 

돌도끼
청동기 시대 돌도끼 (출처: 국립순천대 박물관)

3) 토기의 발전

 

청동기 시대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발전되어가는 토기가 있어요. 

신석기시대 편에서 알려드렸듯, 신석기의 대표적인 토기는 빗살무늬 토기였죠?

청동기에 들어오면서 이러한 토기들도 변화하기 시작하죠. 

 

우선 가장 기본적으로 청동기시대의 주요 토기들은 주로 민무늬, 즉 문양이 없는 토기들이었어요. 

대표적으로 미송리식 토기가 있어요

 

미송리식 토기
미송리식 토기 (출처: 동덕여대 사학과)

이 미송리식 토기는 빗살무늬와는 다르게 아래 부분이 달걀 모양이었고, 주로 양쪽에 손잡이가 있으며, 토기의 목 부분이 나와있으며, 바닥이 평평하다는 특징이 있죠. 신석기시대에 땅에 꽂아 보관되었던 토기들에 비해 이제는 현대의 그릇들과 비슷한 사용 방식을 가지게 변화한 거죠. 

 

이 미송리식 토기는 그 무늬도 의의이지만, 또 하나, 이 미송리식 토기의 출토로 인해 우리나라의 역사학자들이 고조선의 영토 지역을 알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져요. 바로 앞서 살펴본 한국 청동기시대의 대표 유물/유적 비파형 동검, 미송리식 토기, 탁자식 고인돌이 함께 출토된 지역이 고조선의 영토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밝힌 거죠. 신기하죠?

 

고조선 영토
고인돌, 비파형동검의 출토지와 고조선 영토 (출처: 우리역사넷)

즉, 이 비파형 동검, 미송리식 토기, 탁자형 고인돌이 함께 나오는 지역이 한반도 최초의 국가, 고조선의 영향권이었다고 보고 있는 거죠.

 

4) 주거의 발전

 

다음으로 청동기 시대의 주거방식에는 어떤 특징이 있었을까요?

바로 지상가옥이 되었다는 거예요. 

이 말이 뭐냐 하면, 구석기시대에는 아무 곳의 막집, 신석기시대에는 반지하 움집이 주거였다면 청동기시대 이후부터는 사람들의 집이 지상가옥화 되고, 배산임수 되었다는 점이에요. 

제주 청동기 집
제주도 청동기 시대 지상가옥 (출처: 우리역사넷)

특히 이 시기 집터는 대체로 북서풍을 막아주는 야산을 뒤에 두고, 앞에는 시냇물이 흐르는 곳에 식수원인 우물을 중심으로 모여 있다고 해요 (출처: 우리역사넷). 우리의 전통적인 배산임수 양식이죠. 

또한 기존의 집들에 비해 이제는 지상으로 올라왔으며, 신석기시대 집 중앙에 화덕이 있던 것을 구석으로 움직여 조금 더 넓은 생활공간을 마련했죠. 

또한, 공동 집단생활이 진행되며, 개인생활공간 이외에 창고, 공동작업장, 공공의식의 공간 등 마을 공동의 시설들도 등장했어요. 

 

전남 청동기시대 집
전남의 청동기 시대 주거지와 모형도 (출처: 우리역사넷)

 

5) 청동기시대의 예술

자, 그럼 다음으로는 청동기시대의 예술에 대해 알아볼까요?

이 시기에도 그 이전 시기들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조각, 암각화들이 발견돼요. 

주로 이 시기의 예술들은 종교나, 정치적 염원을 담고 있는 것들이 많죠. 

 

예를 들어 아래의 청동으로 만든 띠고리 장식들의 경우 주로 지배층들의 무덤에서 출토되어 사자, 말, 호랑이, 사슴 등의 모양으로 새겨진 주술품 형식을 띠고 있어 풍요로운 생산이나 위엄을 나타내려 노력했죠. 

 

청동 띠고리 장식 (출처: 우리역사넷)

청동기 시대 예술품 중, 특히 눈여겨볼 작품이 바로 울산에 있는 울주 반구대 암각화예요. 

암각화란, 돌에 새겨진 그림이라는 뜻이에요. 

이 암각화가 중요한 이유는 셀 수 없지만 3가지만 설명드리자면, 

1. 세계에서도 최초의 원시 포경(고래사냥)을 다루는 유적이라는 점.

2. 한국사의 수렵 생활사/포경 생활사의 시초라는 점.

3. 청동기시대의 예술이라고 안 믿기는 각 종 별 특이점을 굉장히 디테일하게 그렸다는 점이에요. 

 

이 울주 반구대 그림은 후대의 역사학자들이 예상하길 고래잡이 교육용이었다고 추정한다네요.

그만큼 정교하고, 또 고래잡이의 다양한 방면을 부각했기 때문이죠.  

 

울주 반구대 암각화 (출처: 반구대 박물관)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최근 자연환경이 변화하면서, 울주 반구대 암각화가 있는 울산의 태화강이 불어나면서 이 소중한 유적이 물속에 잠겨 없어질 위험에 있는데, 이에 국가나 문화재청의 조치가 미흡하다고 해요. 

이처럼 한국사뿐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중요한 문화제가 없어질 수 도 있다고 하니 빠른 문제 해결이 돼야 할 듯해요. 


청동기시대 편도 재밌으셨나요?

본격적으로 사유재산이 등장하며, 지배층이다 전쟁이다 하며 본격적으로 격동의 역사를 써 내려가는 시기라 더 재밌으셨을 거라 생각해요. 

저 또한 이러한 공부를 하다 보면 배우는 것도 많고, 문화제 관련 아쉬운 점도 많답니다. 

관심이 많이 필요하구나 하면서요.

 

자, 그럼 다음에는 이러한 청동기를 이어 펼쳐질 철기시대에 대해 알아볼게요. 

그전에 한반도 최초의 국가이자 청동기와 철기시대를 기반으로 이뤄지는 고조선과 위만조선에 대해 한번 읽어보시겠어요?

그럼 다음에 만날 때까지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