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한국사 제 1탄 : 고조선/위만조선에 대한 10가지 정보

민훈트 2022. 10. 12. 00:26

단군왕검
단군왕검의 초상화 (출처: 우리역사넷)

안녕하세요 :)

오늘은 한반도에 생긴 최초의 국가, 고조선의 이야기를 드릴까 해요. 

우리에게 잘 알려진 환웅과 곰, 그리고 호랑이가 나오는 단군 설화의 단군왕검의 나라이기도하고, 현재까지도 매해 10월 3일 개천절의 '하늘이 열린 날'이 기념하는 나라인 고조선, 우리에게는 가깝고도 먼 역사이죠. 

 

이번 편에서는 이러한 나라의 역사에 대해 10가지 중요한 정보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일단 그 이전에 용어 소개부터 잠시 하자면, 고조선기원전 2333년경 단군왕검에 의해 세워져 기원전 194년까지 있었던 나라, 위만조선기원전 194년 설립되어 기원전 108년 중국 한나라에게 멸망당할 때까지의 국가입니다. 

 

1. 고조선은 원래 조선이다. 

맞아요. 

우리는 흔히 고조선이라고 부르지만 원래 나라의 명칭은 조선이에요.

하지만 후에 나오는 조선 (기원후 1392년 태조 이성계가 세운 나라)나 바로 다음에 나오는 위만의 조선 (기원전 194년 설립)과 혼동을 방지하기 위해 역사학자들이 오래되었다는 한자인 고(古)를 붙여 고조선이라고 부르게 되었답니다. 고로, 정식 명칭은 당대에는 조선, 현대에는 고조선인 셈이죠. 

 

2. 고조선 건국설화를 보면 환웅과 곰, 호랑이가 나오는데, 그럼 우리 선조는 동물에서 나온 건가요?

아니죠. 

이 설화는 신석기시대 편에 나온 원시종교 중 하나이 토테미즘, 즉 한 집단, 부족의 상징으로서 동식물을 지칭하는 원시 신앙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어요. 

따라서 당시에 환웅이라고 그려지는 하늘로 대변되는 부족, 곰으로 대변되는 부족, 호랑이로 대변되는 부족이 있었고, 곰과 호랑이 부족이 다투다 결국 하늘과 곰 부족이 융합하여 나라를 세웠다고 이해할 수 있는 거죠.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또한, 이러한 하늘의 후손이라는 설화는 왕권의 존엄성을 부각하기 위함이었고, 곰과의 혼인 부분은 부족을 융합해 하나의 통일된 공동체라는 점을 부각하는 거였다고 하네요. (출처: 위키피디아)

고조선
곰과 환웅의 융합, 고조선

 

3. 초대 왕인 단군왕검은 이름이 4자인가요?

아니죠.

단군왕검은 타이틀이에요.

이 타이틀로 알 수 있는 당시의 사회상, 바로 제정일치의 사회였다는 거죠.  

즉, 단군은 제사장 역할과 왕검은 국가를 통치하는 군주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죠.

따라서, 고조선 시대에 왕은 모두 타이틀이 단군왕검이었던 거예요.

중국의 역사서들에 의하면 고조선 시대의 단군왕검은 모두 47분이 계셨다네요.

 

 

4. 고조선이 남긴 것은 홍익인간뿐이다?

아니죠. 

물론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 사상이 고조선 국가 운영에 굉장히 중요한 근간이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 외에도 중요한 점이 아주 많죠. 여기서는 대표적 2가지 특징만 살펴볼게요. 

 

1번, 고조선의 법률, 8 조법을 봐 볼까요? 

당시 사회는 나름 법치국가였어요. 

바로 고조선의 대표 법률, 8 조법이 있었죠.

이는 고조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으로써, 현재 8개 중 3개의 내용만 확실하게 전승되고 있어요. 

하지만 이를 통해 고조선 사회가 가부장 중심 사회였고, 철저한 계급 사회였고 사유 재산을 중시했고, 형벌은 잘못을 보복하는 데 의의가 있다는 응보주의를 따랐다는 것이 밝혀졌죠. 

 

2번, 단군이 쌓았다고 알려져 있는 강화도 마니산의 참성단이죠.

단군왕검은 제사장의 역할도 겸했다고 했죠?

이에 제사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둥근 하단은 하늘을, 네모 상판은 을 뜻은 참성단을 쌓게 돼요.

이 참성단은 아직까지도 보존이 잘 돼있어 지금도 매년 개천절에는 재천 행사가 열리는 곳이죠. 

 

참성단
강화 참성단 (출처: 강화군청 홈페이지)

 

5. 고조선은 한반도에만 분포되었었다?

아니죠. 

앞서 청동기 편에서 열거했듯이, 고조선의 영향권은 비파형 동검과 고인돌의 출토 범위와 동일하죠. 

아래의 그림을 보시면, 고조선의 세력 범위가 현재의 한반도를 넘어 중국 일부를 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따라서 비록 지금은 한국사의 일부로만 치부되지만, 그 당시의 영역으로는 중국의 일부 또한 그 영향권이었던 걸 알 수 있죠.

 

고조선 영역
고조선 영향력과 유물 출토 대비 (출처: 학습백과 Zum)

 

6. 고조선 시대에도 관직이 있었나요?

당연하죠.

기원전 3세기 경이되면 고조선의 국력이 아주 크게 성장하죠.

그래서 당시의 강국 중 하나였던 중국의 연나라와 대적할 만한 상황이 돼요. 

그러면서 정치적으로 많은 변화를 이룩하죠. 

바로, 정형화된 관직 시스템이 등장하는 거예요.

초기에는 상. 대부. 장군과 같은 관직이 나타나고, 기존의 단군왕검이라는 명칭에서 이라는 명칭이 등장하죠. 그래서 이 이후에 나오는 지도자들을 보면 이름이 부왕, 준왕 등 왕이죠. 

또 하나 달라진 게 있다면 바로, 왕위세습(부자세습)이 일어나는 것도 보실 수 있어요. 

 

7. 고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은 다 같은 나라인가요? 아님 다른 나라인가요?

같고도 다른 나라예요. 

아마 많은 분들이 헷갈려하실 수 있는 내용이지만, 쉽게 얘기하자면, 고조선과 위만조선은 실존 국가로, 고조선이 먼저 존재했고, 위만조선이 이를 이었다고 할 수 있죠. 위만조선에 대해서는 다음 정보를 통해 자세히 살펴볼게요. 

 

기자조선의 경우는 현재까지도 결론적으로는 허구다라고 의견이 모이는 중이에요. 

예전 역사학자들 중 일부는 고조선 후기인 기원전 1000년경 기자라는 사람이 조선의 통치권을 가져가 지배층이 변화했다고 주장하며, 기자조선이라는 명칭을 만들어냈어요.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기자가 실제 있었는지부터 논쟁이 많았고, 더 나아가 그가 실제로 고조선을 통치했는가도 불확실했죠. 

또한 몇몇은 그가 중국 상나라 왕실의 일원이었다는 기자 왕족설과 상나라의 신하로, 상나라가 망하자 주나라의 대신이 되는 걸 거절하고, 대신 조선에 와서 군주가 되었다는 기자동래설 두 가지 설도 주장했어요.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사실화할 증거가 나오지 않았고, 결국 현재까지 다수의 역사학자들이 증거 불충분으로 기자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죠. 

 

결국, 지금 현재로는 고조선과 위만조선만 역사로 인정받고 있어요. 

 

말레이시아에 있는 기자 조각상 (출처: 위키피디아)

 

8. 위만이라는 이주민이 고조선 왕위를 찬탈했다는데 맞나요?

맞기는 하죠. 

기원전 200년경 위만이라고 하는 사람이 연나라에서 무리 1000명을 이끌고 고조선으로 오자 당시의 왕이었던 준왕은 위만에게 서쪽 변방의 관리 직책을 하사해요. 변방에 있던 위만은 세력을 키워 결국 왕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라 위만조선을 개국하니, 찬탈이 맞기는 하죠?

 

하지만 이 위만이 이주민인지 아닌지는 아직 논쟁 중이에요. 

위만이 조선인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위만이 조선에 올 때, 상투를 틀고 조선옷을 입었다는 점과 국호를 그대로 조선이라고 했다는 부분을 강조하죠. 또, 자기 세력이 아닌 고조선 세력을 국정 요직에 올렸고, 토착민과 이주민의 합체가 쉽게 이루어졌다는 점도 중요하게 생각하죠. 

위만은 연나라 사람이다 혹은 국적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지배자가 피지배 국가를 갈 때 그 나라 복장을 한 예는 그 전에도 많고, 설령 위만의 조상이 조선인이라도, 당시처럼 국민의 개념이 없는 시대에 이런 게 뭐가 중요하냐고 주장하죠. 

 

위만의 출신이 어디든, 하나 확실한 것은 이 시대에 또 다른 세력이 등장해 고조선 지배자에 오르며 조선이 큰 변화를 맞이했다는 점이에요. 청동기시대를 근본으로 하던 기존의 고조선이 철기를 근본으로 하는 위만조선으로 변화하게 되니 큰 차이가 있겠죠?

 

9. 위만조선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앞서 알아본 철기시대를 기반으로 했다는 것 이외에 위만조선의 큰 특징은 바로 중계무역이에요.

위만조선은 지리적으로 밑으로는 진국, 동쪽으로는 예나라, 위에는 한나라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를 잘 이용해 서로 간의 직접 교역을 막고 중계무역을 하며 국력을 크게 향상하게 돼요.

이에 대한 증거로 당시 중국화폐인 명도전(明刀錢), 오수전(五銖錢) 등이 다수 위만조선에서 출토되었죠. 

 

반량전 (큰 사진) 오수전 (작은 사진) (출처: 우리역사넷)

 

10. 위만조선의 멸망은 중국 한나라에 의해서인가요?

안타깝지만 맞아요. 

앞서 열거했듯이 위만조선의 핵심은 바로 중계무역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당하는 나라들 입장에서는 화가 많이 났죠.

특히 당시의 강국이라고 할 수 있는 한나라 입장에서는 많이 화가 났죠.

그래서 전쟁을 일으키게 되는 거죠.

바로 조한 전쟁입니다. 

 

근데 하필 이때 한나라 왕이 중국의 역대 최고 황제 중 하나로 꼽히는 무제예요.

 

한 무제
한 무제 (출처: 위키피디아)

그는 동방의 알렉산더 대왕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정복전쟁 왕이자 실크로드를 계획하고, 흉노족을 토벌한 대단한 왕이죠. 

이러한 그의 군림 아래 한나라는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로 발전해 있었죠.

이러한 나라와 이제 연맹 왕국 단계인 위만조선이 싸우게 되니 어쩌면 당연하게도 한나라가 이기게 되죠. 

그렇게 위만조선은 설립 100년도 안돼 멸망하게 됩니다. 

 

한나라가 얼마나 화가 났었는지 여기에 그만두지 않고, 위만조선의 땅에 4대의 군현, 한사군(4개의 군현; 낙랑, 현도, 임둔, 진번 군)을 세우게 되는데, 이건 한마디로 식민지죠. 

 

한사군
한사군 위치 (출처: 위키피디아)

갑자기 위만 조선인들이 남의 지배를 받으니 얼마나 살기가 팍팍했을까요?

그걸 바로 보여주는 게 한사군 시절의 법률, 60조 항 법이에요.

그 이전 고조선이 8 조법으로 군림했다면, 한사군 때는 법률 수가 60개로 늘은 거죠.

늘어난 법 조항만큼이나 살기 힘들었고, 또, 나중에 한반도에 나올 많은 연맹국가들의 1차적 목표가 모두 이 한사군 없애는 거였으니, 사람의 피폐함 정도가 이해되시나요?


어떻게, 오늘 고조선과 위만조선에 대한 정보 10가지 내용은 재밌으셨나요?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는 찬란한 역사를 가진 나라, 고조선.

후에 종교로도 발전하는 단군왕검. 

출신은 아직 열띤 논의 중이지만 철기를 가져와 무역으로 크게 성공도, 멸망도 가져온 위만조선 시대.

재밌으셨길 바라며, 다음 편 위만조선의 멸망 이후 세워진 한사군에 대해 살펴볼 예정이니 이것도 기대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