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한국사 제 2탄 : 한사군(진번군, 임둔군, 현도군, 낙랑군)과 그 영향

민훈트 2022. 10. 14. 03:14

안녕하세요. 

저번 고조선 편에서 위만조선이 한나라에 의해 멸망하고, 그 땅에 4개의 한나라 군현이 생겼다고 말씀드렸죠?

이번 편에는 각각의 한사군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고 이 같은 한사군이 어떻게 한국 초기 국가들을 설립하는데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살펴볼까요?

 

준비돼셨으면 렛츠고!

 

1. 한사군 

한사군
기원전 106년 한사군 지도 (출처: 위키피디아)

앞서 살펴봤듯, 한나라는 기원전 108년 위만조선을 정식적으로 멸망시켰고, 그해 낙랑군, 임둔군, 진번군이라는 3개의 군현을, 1년 뒤인 기원전 107년에 마지막 현도군을 위만조선의 옛 영토에 설립하면서, 정식적으로 한사군의 시대를 영립 했어요.

 

이 중 설립 25년 만에 없어진 진번군과 임둔군, 후에 토착민들과의 계속된 싸움으로 요동지방으로 움직인 현도군보다는 낙랑군이 메인이라고 할 수 있죠.

 

 1) 진번군 (기원전 108년부터 기원전 82년까지)

 

가장 먼저 생긴 3 군현의 하나로, 원래는 15개의 현(군현을 이루는 작은 단위)으로 이루어져 있었어요. 

설립된 지 25년 만에 토착민들의 반발과 싸움으로 임둔군과 함께 폐지되었고, 폐지 후 낙랑군에 귀속되었다고 해요. 

 

이 진번군의 실제 영토는 아직도 많은 학자들 사이에 의견충돌이 나고 있는데, 혹자는 남방설을, 다른 이는 북방설을 주장하고 있어요. 남방설의 경우, 진번군의 영토가 현재의 강원도나 황해도다라고 주장하고, 북방설의 경우는 요동이나 고구려 땅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죠.

 

또 하나, 기원후 200년대가 되면 이 옛 진번군 자리에 새로운 대방군이 등장하며 고구려군에 의해 멸망하는 314년 까지 약 100년간 독립된 군현으로 생활하게 돼요. 

 

2) 임둔군 (기원전 108년부터 기원전 82년까지)

 

진번군과 함께 비교적 짧은 시기를 지닌 한사군, 임둔군.

임둔군 또한 진번군과 동일하게, 설립 초기에는 15개의 현을 가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현 안의 인구수가 적었고, 이탈자가 많아지면서 기원전 82년 6개의 현만 살아남았고, 그 수가 하나의 군현으로 살리기에는 적어 결국 폐지되었어요.

임둔군은 폐지 이후 낙랑군에 흡수, 합병되었답니다. 

 

임둔군은 다른 군현에 비해 비교적 위치가 확실시되는데, 현재의 강원도 지역이었다고 보고 있어요.

 

3) 현도군 (기원전 107년부터 4세기 말)

현도군은 기원전 107년 설립되었어요.

현도군은 폐지 전까지 두 번 군현을 이동했는데, 첫 번째는 기원전 75년, 토착민들의 반발로 고구려 서북쪽으로 이동했고, 그 이후 기원후 1세기경, 고구려의 팽창과 압박으로 더 북쪽으로 또 한 번의 이동을 했죠. 이로서 한반도에는 낙랑군 하나 남게 되지요. 

저 멀리 북쪽으로 이주해 갔던 현도군은 겨우 명맥만 이어가다가, 기원후 4세기경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게 됩니다. 

 

한사군 현도군 이동
한사군과 현도군의 이동 (출처: 위키피디아)

4) 낙랑군 (기원전 108년부터 기원후 314년까지)

 

한사군 중 가장 핵심이자, 오래도록 남아있었던 낙랑군.

낙랑군의 위치로는 현재 대동강 주변이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에요. 

낙랑군은 기본적으로 한에서 파견한 지방관이 한나라의 제도를 가지고 통치했지만, 기존 3개의 군현의 문제점, 토착 세력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전통적 지배 방식을 어느 정도 인정했다고 해요. 또 토착민들을 하급 관원으로 쓰면서 중국계 주민과 토착 주민 간의 융합을 꾀하였고, 이 때문에 토착화가 쉬웠던 것으로 알려지며, 한나라가 망한 후에도 시스템이 상당 기간 존속했다고 하죠. (출처: 우리역사넷)

 

이러던 낙랑군을 몰아낸 건 바로 고구려의 미천왕입니다. 

이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고구려 편으로 알아보겠지만 고구려의 서쪽과 남쪽으로 많은 팽창을 이룩하신 분이에요. 

 

2. 한사군 시대와 그 이후 초기 국가의 시작

 

한사군이 있었을 당시는 끊임없는 이주민과 토착민과 사이의 불화, 그로 인해 사회 불안, 그리고 60 조법으로 나타낼 수 있어요. 이러한 사항은 한사군 중 3개인 진번군과 임둔군, 현도군 모두 토착민과의 싸움으로 이주 혹은 폐지되었다는 점에서도 나타나죠. 

 

자유롭게 살던 사람들이 갑자기 남의 지배를 받고, 외국인들이 이주해와 국가의 요직을 모두 차지하고, 다른 문화, 인식으로 대하니 민족성도 고조되었을 거고, 빨리 독자적인 생활도 원하게 된 거죠. 또한 기존의 고조선 시대의 법률이 8 조법인데 반해 이 한사군 시절의 법령은 60조로 늘었났으니 얼마나 삶이 팍팍 해졌겠어요?

 

이러한 사실은 여러 부족들이 하나로 뭉쳐 국가화되는 걸로 이어집니다. 

여기에 성공한 국가들이 바로 후 편에 등장할 한반도 최초의 연맹국가, 부족 국가들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마한, 변한, 진한이죠. 

이러한 연맹국가, 부족 국가들의 초기 목표가 모두 공통적으로 바로 이 한사군을 퇴출하는 것이었으니, 이 한사군이 쏘아 올린 공의 무게가 느껴지십니까? 

 

또한 결국 이 한사군의 남은 두 군현(현도군과 낙랑군)이 고구려에 의해 정말 멸망하게 되니, 초기 목표는 이룬 셈이죠. 

 


오늘은 어찌 보면 아픈 역사라고 할 수 있는 한사군 시대에 대해 알아봤어요. 

다음 편에는 앞서 언급한 7개(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마한, 변한, 진한)의 한반도 초기 연맹국가 및 부족 국가에 대해 살펴보며, 본격적으로 한국사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 볼까 합니다.

궁금하시다면 다음 포스트에서 만나요 :)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