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

중국사 2탄: 중국 최초 통일왕국 진나라 ( 진시황제)

민훈트 2020. 9. 19. 03:04

안녕하세요 ^^

오늘은 저번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나라의 짧지만 강한 역사를 알아볼 거예요. 

랫츠 고~

<통일왕국 진나라>

1. 제후로의 인정받기

진나라의 시초는 주나라 8대 임금인 효 왕 시절인 기원전 900년 경에 살던 비자라는 인물이에요.

이 비자는 말을 굉장히 잘 길러 왕의 환심을 샀고, 이에 왕은 진의 지역을 하사했다고 전해지죠. 

 

본격적으로 진이 제후의 반열에 오른 것은 그로부터 150년이 흐른 기원전 750년 경 동주시대에서였죠. 진의 양공이라는 사람이 수도를 동쪽으로 옮기던 주나라 평왕을 수호한 공이 인정되었고, 이에 제후국으로 인정을 받게 된 것이죠. 

 

비록 제후로 인정은 받았지만, 상대적으로 늦은 시기에 인정받았기 때문에 다른 제후국들에게 초반에는 멸시를 받았다고 알려졌어요. (출처: 사마천 사기)

 

주나라와 제후국: 진한 핑크가 진나라 (출처: 독일 위키피디아)

2. 춘추/ 전국시대 

기원전 7세기는 본격적으로 진나라가 성장을 하기 시작한 시기예요.

특히 기원전 650년에 진을 다스리던 목공은 춘추시대의 5대 강국을 나타내는 춘추 5패의 일원으로 알려질 만큼 대단한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죠. 

 

그는 타국 출신자를 적극적으로 등용했고, 주변의 소국들을 다수 합병해서 중국의 서쪽 지역의 패자로 진나라를 우뚝 세웠죠. 또한 고대 중국 4대 악녀의 하나인 여희로 인해 약화된 또 다른 진(晋) 나라의 땅 상당수를 격파, 자신의 진나라로 합병하기도 했어요. 단 하나의 단점이라면, 그의 사후 당시 유력한 대신들의 순장을 명해, 그가 죽고 나자 진나라의 국력이 많이 약화된 것을 들 수 있겠죠?

 

그래도 여전히 강국으로 군림하던 진나라의 위세는 전국시대에도 이어져요.

다른 6개의 나라들과 함께 마지막까지 남은 7개의 성; 전국칠웅에 하나로 이어지게 되니까요. 밑의 지도를 보시면 진나라(짙은 핑크색)의 영토가 얼마나 컸는지 아실 수 있어요. 

 

기원전 260년 전국칠옹 지도 (출처: 중국 위키피디아)

3. 본격적인 통일 이루기

진나라의 통일 정책의 시발점에는 효공이 있습니다.

그는 기원전 361년 군주의 자리에 오르면서, 진나라의 위상을 세우기 위해 노력했죠. 

특히 외부의 인재를 찾고, 등용하는 것에 매진했는데 여기서 등용된 인재들 중에는 법가를 공부한 정치인 상앙도 있었죠. 법가는 그 시기 유가(유학)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세계와 차별되는 방법으로 진나라가 통일을 할 수 있는 큰 역할을 담당했죠. 이러한 법가를 진나라에 들여온 존재가 상앙이라는 거죠.

그는 부국강병을 위해 진나라의 정치개혁을 두 번이나 시행했고, 이에 진나라는 명실상부한 강대국이 될 수 있었어요.  두 차례의 변법을 시행하면서 진나라는 급속하게 국력이 신장되어 최고의 강대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어요.

 

개혁가 상앙의 동상 (출처: 위키피디아)

 

이러한 개혁으로 다른 6개 국가보다 더 빠르게 강력한 중앙집권을 이룩한 진나라는 가장 마지막까지 가지고 있던 주나라의 제후국 신분을 벗어버리고 하나의 독립된 나라로 스스로를 변화시켰죠. 

그 결과 효공 다음부터는 왕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답니다. 

 

그리고 기원전 246년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진나라의 시황제가 왕위에 오르면서 본격적으로 주변국들을 하나하나 흡수, 합병하는 대장정이 시작 되게 되죠.

진시황제 (출처: history.org)
전국7웅 (출처: Zum 학습백과)

가장 처음은 전국7웅 중 가장 약했던 한나라였습니다. 

원래 조나라를 침공해 멸망시키려고 했던 진은 조나라와의 계속된 전쟁에 지쳐 눈길을 돌리게 되죠.

약한 나라였던 한나라는 급작스러운 진의 맹공에 전쟁 시작 1년도 안 되는 기원전 230년, 한나라 영토 전부가 진의 휘하에 놓이게 되었고, 왕이 빠르게 투항하여 비교적 손쉽게 진나라의 승리로 끝났어요.

 

그리고 재정비의 시간을 가진 진나라는 다시 원래의 목표 조나라로 침공해 들어가요. 

마침 자연재해와 기근에 국력이 약화될 대로 약화된 조나라는 이번 진나라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고, 기원전 228년 조나라의 왕이 왕위를 투항하면서 기마전투의 본고장인 조나라 또한 진나라에게 멸망되고 말았죠.

 

그 3년 뒤인 기원전 225년에는 전국7웅 중 가장 인구가 많은 위나라를 물을 이용해 공략하죠. 

바로 둑을 만들어 물을 담았다가 한 번에 위나라 왕성으로 보내 물에 잠기게 하는 것이었어요. 

이 전략 탓에 3일도 안돼는 시간에 성벽이 무너졌고, 곡식이 썩고, 피부병이 창궐하는 지경이 일어나 결국 위나라 왕이 진나라 군대에게 투항하게 되죠. 

 

그리고 이에 얼마 안되 진나라와 한 때 연합군이었던 연나라의 왕은 이러한 진나라의 팽창에 왕국이라도 보존해보고자 자신의 아들의 목까지 잘라 진나라에게 진상했지만, 왕위를 보존하지 못했죠. 이 시기, 그 옆의 초나라는 진나라에 대항해 최대한 싸웠지만, 결국 운명을 다하고 말았답니다. 

 

5국을 정리한 진시황제가 그만둘 리가 없겠죠?

이제 마지막 남은 제나라를 복속시킬 전쟁을 일으키게 됩니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제나라가 연나라가 멸망하기 전까지 진나라에 대해 대항하지 않았다는 점이죠. 

그 이유는 알 수없지만 제나라의 왕이 다른 4국들이 멸망하는 것을 보고도 대항책을 미루다 결국 아무런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기원전 221년 마지막으로 진나라에 통합되게 됩니다. 

 

진나라의 천하통일

4. 최초의 황제, 진시황제와 명실상부 통일 중국

38살의 나이로 천하제일의 황제가 된 진시황제. 

그의 통일 진나라는 크게 3개로 요약될 수 있죠. 

 

첫 번째는 황제에게 권력집중

그는 군현제(전국을 36개의 군으로 나누고, 군 밑에는 현을 둠)를 시행하였고, 군수와 현령을 중앙에서 파견했죠. 이 군수와 현령은 봉급을 받는 직책으로 그 이전과 달리 세습이 안 되는 일시적 직책이었기 때문에 중앙으로 권력을 집중할 수 있었죠.

또한 중앙 정부도 황제를 중심으로 3개의 공, 책임자와 9경, 구체적 정무를 담당하는 직책을 구분하여 중앙으로의 힘을 방해할 수 없도록 했다고 해요.

 

그렇다면 그의 제위를 아우르는 두 번째는 무엇일까요?

바로, 통일성 구축이에요. 

지금까지는 여러 개의 나라로 나뉘어 살던 지방들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그는 가장 먼저 화폐를 통일했어요. 

또한 문서를 위한 글자체 또한 통일했다고 해요. 

 

마지막 특징은 바로, 대규모 토목 공사죠. 

가장 대표적으로 북쪽의 유목민족을 막기 위해 지은 만리장성과 그의 화려하고 고귀한 존재를 뽐내기 위해 지은 아방궁 그리고 그의 사후 세계를 위한 여산릉이 있죠. 이 여산릉의 일부가 바로 흙으로 만들어진 군사부대, 병마용이랍니다. 

병마용 (출처: 브리타니카 백과사전)

없어진 아방궁을 제외하고 만리장성과 여산릉만 봐도 그의 공사가 얼마나 컸을지 가늠해볼 수 있어요. 

중국의 만리장성 (출처: 위키피디아)

이처럼 많은 업적을 남긴 그였지만, 무시하지 못할 단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백성들을 탄압했다는 점불로장생을 너무 원했다는 점이에요. 

 

특히 제위기간 3차례나 암살위기를 겪은 그는 원래도 삶에 애착이 있었지만 그 정도가 심하게 되죠. 

그래서 불로초를 찾는데 매진했고, 몸에 좋다고 하면 금속을 먹기도 했죠. 이러한 금속 중 오랜 시간 복용하면 중독이 돼 생명을 단축시키는 수은도 있었다고 해요. 

 

5. 진시황제 사망 이후 진나라

결국 이처럼 불로불사를 외치던 진시황제는 50살의 나이로 불로초를 찾아 떠난 여행길에서 사망하고 맙니다. 

 

이를 옆에서 본 환관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 점을 숨겼고, 그 후 왕위에 오른 진시황제의 어린 아들은 사치와 여색을 탐하는 데 정신이 팔려 천하를 통일했던 진나라는 빠르게 쇠퇴했죠. 

 

그 이후 이를 보다 못한 재상이 왕을 죽이고, 새로 왕을 옹립해 사태를 수습하려고 했지만 이미 예전 동주시대처럼 각 지역에서 스스로를 왕이라고 부르며 반란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죠. 진나라의 새로운 황제는 스스로 진시황제가 올려놓은 황제 자리를 벗어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왕으로 격하했지만 이는 이미 늦은 계책이었죠. 

 

결국 진나라는 통일 이룩 15년 만에 한나라의 유방에게 공격을 당해 몰락하면서 짧은 통일 왕조 역사를 마치게 되었어요. 

그리고 진나라의 뒤를 이은 대륙의 패권은 한나라를 세운 유방과 초나라를 세운 항우 간의 싸움; 초한전쟁으로 진행되게 된답니다. 

 


주나라의 제후국에서 춘추전국시대 강력한 국가로, 거기서 진시황제의 등장과 최초의 황제국이자 통일국을 이룩한 나라; 진나라.

 

비록 통일 역사가 짧지만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것은 의심할 수 없겠죠?

 

다음 편은 소설 초한지의 배경이기도 한 초한 전쟁기를 살펴보도록 할게요 :)

그럼 안녕 ~~